최근 젊은 소비자 사이에서 약속 전에 서로 꾸미는 수준을 미리 정하는 ‘꾸밈 단계 맞추기’가 유행하고 있다. 1단계인 ‘민낯으로 가볍게 만나기’부터 4단계인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큼 완벽하게 꾸미기’까지 만남의 성격에 따라 꾸밈의 정도를 미리 약속하는 것이다. 그냥 각자 스타일대로 입고 만나도 될 텐데 왜 굳이 꾸밈의 단계까지 맞추는 걸까? 여기에는 불필요한 감정 및 에너지 소모를 줄이면서도 만나는 경험 자체를 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요즘 소비자들의 심리가 숨어 있다.
이처럼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찾아 수집하는 소비자, 이른바 ‘경험 컬렉터’가 새로운 비즈니스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은 과거 경험을 준비하는 데 필요했던 번거로운 과정을 크게 줄이면서 이런 욕망에 불을 지폈다. 여행이 대표적인 예다. 예전에는 여행 계획을 짜려면 수많은 블로그와 영상을 찾아봐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성형 AI에 ‘아이 동반, 1박 2일, 예산 50만 원’ 같은 조건만 간단히 제시하면 숙소, 교통, 맛집, 관광 동선까지 완벽하게 짠 여행 계획을 바로 받아볼 수 있다.
준비 과정의 부담이 줄면서 소비자들은 더 많은 경험에 과감히 도전하게 됐다. 한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일생에 단 한 번만 여행할 수 있다면 어디로 가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다수가 5성급 호텔이 아닌 얼음 호텔을 택했다. 불편하고 낯설더라도 ‘오래 기억에 남을’,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경험을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경험 컬렉터’를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을까? 첫째, 의미 있는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은 버려진 트럭 방수포를 재활용해 가방을 만든다. 이 가방은 다른 제품보다 무겁고 비싼 데다 재활용 소재의 특성상 이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유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브랜드 가치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둘째, ‘재미’는 때로는 의미보다 더 강력하게 소비자의 선택을 이끈다. 일본에서 출시된 초코송이 모양 무선 이어폰은 26만 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순식간에 완판됐다. 해태제과의 제품 ‘오예스’ 모양의 보조배터리는 크라우드 펀딩에서 8만5000%가 넘는 놀라운 목표 달성률을 기록하며 정식 제품으로 출시됐다. 소비자들에게 구매 이유를 물으니 “그냥 재미있어서”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셋째, 상징적인 서사를 부여해야 한다. 나이키의 ‘에어 조던’은 단순한 농구화가 아니다. 소비자들은 신발을 통해 마이클 조던이라는 전설과 1980년대의 영광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함께 소유하는 경험을 한다.
결국 경험 컬렉터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소비자를 경험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가 브랜드의 세계관에 직접 참여하고 몰입할 때 그 경험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한 개인의 기억과 정체성의 일부가 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