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직장인 최용주 씨(32)는 수면에 큰 돈을 썼다. 백화점에서 20만 원 짜리 베개를 구매한 것이다.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근무하는 업무 특성상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아침마다 목이 뻐근한 거북목 증상이 점점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최 씨는 “잠 잘 시간이 줄어드는데 그 시간 만큼이라도 숙면하기 위해서 큰 맘 먹고 비싼 베개를 장만했다”고 말했다.
최 씨처럼 ‘숙면’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최근 수면의 시간 뿐만 아니라 수면의 질까지 떨어지면서 짧은 시간이라도 질 높은 잠을 위해서 매트리스나 베개 등 관련 상품에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10세 이상 국민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 1분으로 199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 실제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도 11.9%로 5년 전보다 4.6%포인트 증가했다. 슬립테크 기업 에이슬립이 성인 24만7000명의 수면 패턴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한 결과 실제 평균 수면 시간은 5시간 59분에 그쳤다. 이에 건강한 수면을 통해 일상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슬리포노믹스’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수면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침구류 뿐만 아니라 조명, 향, 전동 모션베드까지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한 ‘눕테크’ 제품들이 백화점 리빙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1~8월 리빙 카테고리 매출 1위는 ‘베개’가 차지하며 전통적으로 리빙 매출 1위인 가구를 넘어섰다. 이 기간 베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했다. 과거 단순 침구 제품이던 베개는 이제 기능성과 프리미엄 소재를 갖춘 제품으로 진화하면서 객단가도 1년 전 7만 원에서 올해는 13만 원으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수면 관련 소비는 침실 전체로 확산되는 추세다. 단순히 침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취침 루틴’과 분위기 연출까지 아우르는 ‘숙면 라이프스타일’로 진화했다. 현대백화점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HBYH에 따르면 무드등·조명 매출은 22%, 룸스프레이, 필로우 미스트 등 방향 제품은 20% 증가했다.
침대 매트리스에도 ‘통 큰’ 지출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프리미엄 매트리스 시장도 불황을 겪고 있는 가구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 프리미엄 매트리스 시장에 가장 먼저 도전한 시몬스는 1000만 원대 최상위 라인인 ‘뷰티레스트 블랙’을 앞세워 지난해 20%가량 성장했을 정도로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최근에는 침대 각도를 여러 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모션베드 인기도 뜨겁다. 시몬스에 따르면 올해 1~8월 ‘N32 모션베드’ 제품 판매량은 전년 대비 7배 증가했다.신세계까사 브랜드 마테라소는 7월 1000만 원대 매트리스인 ‘마테라스 헤리티지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런칭 2개월 만에 매출이 2배 가량 증가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에이치앤아이 글로벌 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매트리스 시장 규모는 2024년 7억8090만 달러에서 2033년 14억9782만 달러로 연평균 성장률 6.73%를 기록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면의 질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베개와 매트리스가 기꺼이 지갑을 여는 대표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며 “앞으로도 숙면 기능을 강화한 프리미엄 제품군이 시장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