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양 의지에도 불신 못 버려
국내 주식 팔고 美 주식 보유 늘려
외국인 3분기 8조 순매수와 대조
“기업 혁신-주주환원 확신 부족”
자영업자 이모 씨(42)는 여윳돈이 생기는 족족 미국 나스닥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산다. 팬데믹 당시 국내 증시에 투자해 쏠쏠한 수익을 봤다던 그는 “이제 ‘국장(국내 증시)’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씨가 투자했던 종목이 자회사를 분할하고 중복 상장하면서 주가가 하락해 수익을 대부분 잃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씨(37)는 올 6월 아파트를 매수하기 위해 갖고 있던 국내 반도체 기업과 방산 기업의 주식을 모두 팔았다. 김 씨는 “당시 수익률이 100%가 넘었는데 지금 더 오른 주가를 생각하면 아쉽다”면서도 “한국에선 아직 주식보단 부동산이 좋은 투자 수단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올해 들어 코스피가 40% 넘게 오르고 ‘불장’이 이어지고 있지만 국내 증시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불신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부양 의지와 외국인의 대규모 순매수에도 개인투자자들은 코스피의 고점을 예상하면서 유례없는 순매도에 나섰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이달 26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은 코스피에서 18조9854억 원을 순매도했다. 이 중 17조6580억 원(93%)을 3분기(7∼9월)에 팔아치웠다. 특히 이달 들어서만 9조7113억 원 순매도하면서 지난해 2월(8조4120억 원 순매도) 기록을 깨고 월별 최대 순매도 규모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개인의 행보는 3분기 외국인(11조6356억 원)과 기관(2조1205억 원)이 대규모 순매수한 것과 대조적이다. 외국인은 3분기에 삼성전자(7조635억 원)와 SK하이닉스(1조1888억 원)를 합쳐 8조2523억 원어치나 사들였다.
올 6월 이후 코스피가 25.5% 상승했지만 개인은 매달 순매도 중이다. 다만 세제 개편안 여파로 주가가 3.88%나 급락했던 지난달 1일, 한미 관세협상 불확실성 확대 및 금리 인하 기대 후퇴로 2.45% 급락했던 이달 26일 등 시장이 출렁일 때는 1조 원 넘게 순매수하며 저가 매수에 나서기도 했다.
국내 주식을 팔아치운 개인투자자들은 미국 주식 보유를 늘리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4일 기준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보관액은 2192억2500만 달러(약 309조 원)로 6월 말 1844억5400만 달러(약 261조 원) 대비 18.9%나 늘었다. 올해 들어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상위 10개 ETF 중 1위를 포함해 4개가 미국 S&P500과 나스닥100을 추종하는 ETF인 반면, 코스피를 추종하는 ETF는 5위와 10위뿐이었다.
상대적으로 선진 시장인 미국 증시 투자가 쉬워진 데다 국내 증시에 대한 여전한 불신이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를 외면하는 이유다. 익명을 요청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세제 개편안이 결국 개인투자자들이 원하던 방향으로 마무리됐지만, 크지 않은 이슈로 불필요한 잡음이 생기면서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며 “기업들의 혁신성이나 수익성이 나아질지, 주주 환원을 늘릴지 등에 대해서도 확신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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