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현황과 노동안전대책’ 좌담회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
과징금은 최후에… 사고 방지에 초점, 산재 반복 땐 기업 가치 하락할 것
김기선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업, 중대재해처벌법 우려 과해… 실제 처벌 받는 곳 많지 않을 것
유성규 성공회대 겸임교수
1만 명당 사망사고자 비율 英의 13배… 사업주가 안전수칙 엄격하게 관리를
SPC, 포스코이앤씨 등 대기업에서 작업장 사망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최근 코레일이 관리하는 경북 청도군 경부선 선로에서도 근로자가 숨지는 등 민간과 공공을 가리지 않고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연간 사망사고가 3명 이상 발생한 기업에 영업이익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내놨다. 동아일보와 고용노동부는 23일 산업재해 현황을 점검하고 정부 대책 실효성을 진단하는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오른쪽부터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 김기선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유성규 성공회대 겸임교수.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SPC, 포스코이앤씨 등 대기업에서 작업장 사망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최근 코레일이 관리하는 경북 청도군 경부선 선로에서도 근로자가 숨지는 등 민간과 공공을 가리지 않고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 2022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사업주에 대한 형사 처벌이 강화됐는데도 산재 사망사고는 유의미한 감소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가 최근 연간 사망사고가 3명 이상 발생한 기업에 영업이익의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의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강한 처벌이 산재를 막을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고용노동부와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권창준 노동부 차관, 김기선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유성규 성공회대 겸임교수를 초청해 산업 현장의 재해 현황을 점검하고 정부 대책의 실효성을 진단하는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 “안전 투자를 비용이라고 생각, 산재 반복돼”
산재가 계속되는 원인에 대해 유 교수는 “야간 근로를 줄이고 근로형태를 바꾸는 등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접근했어야 한다”며 “이를 그대로 뒀으니 예산과 노력을 투입해도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산재 사고의 상당 부분이 비정규직이나 하청 근로자 등 취약 근로자에게서 발생하는 부분이 많다”며 “이들의 안전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차관은 “여전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경제 논리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며 “기업이 안전에 대한 투자를 비용이라고 생각하니 안전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안전에 대한 투자가 일종의 자본이고 이를 통해 생산성 향상을 이룰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긴다면 반복적인 사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노동부가 발표한 대책에 따라 사망사고로 3년간 영업정지를 2번 받고 이후 영업정지 사유가 발생한 건설사에는 등록 말소 처분까지 내릴 수 있게 된다. 정부가 강력한 제재를 내놓자, 경영계 등에서는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지적이 나왔다.
권 차관은 “과징금은 최후의 수단”이라며 “제재가 강하다는 입장은 산재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사고 발생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데 이미 사고를 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도 “지금은 비상 상황”이라며 “근로자 1만 명당 사고사망자 비율인 사고사망 만인율이 한국은 2022년 기준 0.39로 일본(0.13)의 3배, 영국(0.03)의 13배”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징금보다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안을 고민해도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업이 과도한 우려를 하고 있다”며 “과징금이 확정되려면 반복성과 고의성 등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입증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실제로 과징금이 부과될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벌이 강화되면 산재를 줄일 수 있냐’는 취지의 질문에 김 교수는 “모든 나라의 고민일 것”이라며 “최종적으로는 사업장 내에 어떻게 자율적인 안전 예방 체계를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도로교통법은 규범을 준수해서 사고를 예방하고 원활한 교통 순환을 이루자는 게 목적”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등도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산재를 예방해야 한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산재 해결 안 되면 기업 가치도 하락”
건설 경기가 불황인 상황에서 과징금 등 경제적인 제재가 가중되면 건설업이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업계 우려에 대해 권 차관은 “적정 공사 기간을 보장하고 적정 공사 금액을 제도화해 사고 발생을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안전을 비용으로만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권 차관은 “한 해에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38조 원이고 국내총생산(GDP)의 1%가 넘는다”며 “환경, 사회,투명 경영(ESG)을 강조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데 산재가 계속되면 기업 가치가 하락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번 대책에는 적정 공사 금액을 보장하고 적정 공사 기간을 확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며 “완공까지 시일과 예산이 촉박한 것은 큰 부담인데 중장기적으로 건설업 재무 건전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이 안전 투자를 늘리기보다 최고경영자(CEO)의 처벌 줄이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중처법 시행 후 영향력 있는 기업이 안전보건 경영에 투입하는 노력이 많아졌다”며 “이번 대책을 보면 비용편익 관점에서 안전보건 투자를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 차관은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변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산재 감축 효과가 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고 방지에 초점을 두면 과징금까지 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안전에선 ‘네 식구 내 식구’ 가리지 말아야”
이번 ‘노동안전 종합대책’에는 근로자 등에 ‘작업 중지 요구권’을 부여해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산재 발생 위험이 있을 때 개별 근로자 등이 작업 중지를 요구할 권한을 갖는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작업중지권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근로자 교육과 참여, 알권리 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권 차관은 “최근 들어 외국인 노동자와 고령자, 특수고용직 근로자의 재해가 잦다”며 “다국어를 지원하거나 예방적 장치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업중지권이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는 의견들도 나왔다. 유 교수는 “위험한 업무를 주로 하도급 업체에 많이 주는데 하청 근로자들은 문제를 발견해도 원청에 개선을 요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20년 차 베테랑들도 새로운 원청 사업장에 가면 신입사원이나 다름없다”며 “정보가 불완전하니 위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적어도 안전에 관해선 ‘네 식구 내 식구’ 가리지 말자는 것”이라며 “산업안전은 기본적으로 위험원을 가진 사람이 가장 잘 대비할 수 있으니 그걸 준수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권 차관은 “하청 근로자들이 산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산재의 절반 가까이 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가 70%를 넘는다”며 “근로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근로자 부주의 탓’ 지적엔 “사업주도 의무 다해야”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안전 장비 착용을 요구해도 근로자가 따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유 교수는 “출근 시간이 새벽 5시여도 이를 지키는 이유는 사업주가 지각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안전모 미착용에 대해서도 사업주가 이런 노력을 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용직이거나 신규 직원의 경우에 사고가 좀 더 잦다”며 “‘난 오늘 하루 일하고 갈 건데, 이 사업장에 오래 있지 않을 건데’ 하는 인식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업주도 의무를 다해야 하고, 근로자도 나의 안전과 위험에 직결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 차관은 “그래서 노사가 함께 가야 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며 “원하청 노사가 함께 안전 규범을 만들게 되면 같이 만들었으니 함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책이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 필요한 점을 두고 권 차관은 “외국인 근로자와 고령자, 특수고용 근로자 등 최근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이들에 대한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질병 같은) 산업 안전보건에 관한 부분도 앞으로 보충해야 하고, 새로운 기후 위기에 따른 문제들도 다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통해 준비 중인 ‘산재 예방 5개년 계획’도 준비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교수는 “실천이 중요하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안전 역량을 다하지 않는 사업장들이 안전 수칙을 준수하게 해야 하고, 50억 원 미만·50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차관급 격상에 맞춰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해야 미국, 영국 등 산업안전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지 비전과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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