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의 늪에 빠진 자영업자] 〈하〉 신용불량자 딱지 떼고 새 출발
“이제 빚 독촉 사라져 생업에 집중”… 기존 기금 4만여명 빚 4조 탕감
새정부, 113만명 16조 채무조정… “도덕적 해이 우려, 엄격한 심사를”
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새도약기금’ 출범식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오른쪽에서 네 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현판 제막을 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새도약기금은 이재명 대통령 공약 사항인 배드뱅크의 새 명칭이다. 내년부터 총 113만4000명의 빚 16조4000억 원을 탕감할 예정이다. 뉴스1
“거의 20년 만에 제 이름으로 된 통장이 생겼어요.”
방과후 교사 장봉준 씨(55)는 몇 년 전 본인 명의의 통장을 갖게 됐다며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더라”고 말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1억5000만 원이 넘는 빚을 졌다. 건설업 일용직까지 전전했지만 빚은 줄지 않았다. 그렇게 약 20년을 버티다 코로나19 직전 정부의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사업에 지원해 빚을 탕감받았다. 신용불량자 딱지를 떼고 통장을 만들 수 있으니 급여를 제대로 받을 수 있고 취업할 때도 더 떳떳하다.
자영업자들은 빚 탕감 이후 경제 활동의 ‘족쇄’가 풀린 것 같다고들 말한다. 빚이 장기간 연체되면 빚을 카드나 사금융 등으로 돌려막으며 빚이 더 불기 쉽다. 또 신용불량자 신분으로 통장, 신용카드를 만들기 힘들고 취업에도 제약이 생겨 막막한 이들이 많다.
● ‘새도약기금’ 출범으로 채무조정자 확대
1일 출범한 새 정부의 배드뱅크 ‘새도약기금’은 앞으로 약 113만 명의 채무를 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채무 조정 규모는 16조4000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과거 윤석열 정부에서 시행한 소액연체자 지원사업 새출발기금은 2020년 4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사업을 한 소상공인 중 대출을 3개월 이상 연체하거나 폐업이나 휴업으로 빚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지원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새출발기금 신청자는 누적 14만9545명으로 15만 명에 육박했다. 이들의 채무액은 누적 24조308억 원 규모다. 빚 탕감 구제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캠코 등은 전체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신청 채무자 중 누적 4만3788명의 채무 원금 약 3조9745억 원을 일부 매입하는 방식으로 약 70%의 원금을 감면했다.
과거 채무탕감 수혜를 본 이들은 이런 제도 덕에 인권도 보호받았다고 느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직전에 경기 의정부시에서 음식점을 차렸던 정모 씨(37)도 채무조정으로 재기의 기회를 얻었다. 정 씨는 코로나19로 매출이 개점 1년 만에 절반 넘게 줄어 2억 원의 빚을 지게 됐다. 급하게 카드론과 저축은행 대출로 막아보려 했지만 빚을 해결하지 못해 결국 가게마저 헐값에 내놔야 했다. 대부업체, 저축은행 등의 빚 상환 독촉에 시달린 그는 “나름의 유명한 저축은행도 사채업체만큼 고압적으로 빚을 갚으라고 독촉해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며 “빚을 탕감받고 나서야 독촉이 끝나 다시 직장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의류 판매업을 하던 박모 씨(47)는 빚 6500만 원가량을 1500여만 원으로 조정받았다. 그는 “빚이 탕감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살았다’는 안도감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며 “수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고통 받았는데 드디어 무거운 짐을 내려놨다”고 털어놨다.
● “수혜자의 상환 능력 엄격히 심사할 필요”
다만 채무탕감 정책이 도덕적 해이로 이어지지 않도록 심사를 엄격히 하고 채무자들을 위한 컨설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서민들에게 저금리로 대출을 내주되, 갚을 능력이 있는지 좀 더 엄격하게 심사할 필요가 있다”며 “배드뱅크 규모가 커지면 대출을 내주는 금융기관들 역시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어떤 기준으로 채무조정 규모를 정할지 상식적인 수준을 제시해야 채무탕감에 대한 반발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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