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이 ‘팝업 성지’를 넘어 기업들의 본진(本陣)으로 자리잡고 있다. 임차 매장을 통한 단기 홍보에서 벗어나 주요 소비재 기업들이 직접 건물과 부지를 매입해 플래그십 거점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연무장길 일대 땅값은 3.3㎡당 3억 원을 웃도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침대 브랜드 시몬스는 성수동 연무장길 인근 건물을 355억 원에 매입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50억 원 선에서 거래됐던 건물이 1년 만에 100억 원 가까이 올랐다. 업계에서는 브랜드 쇼룸 및 체험 공간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23년 6월 연무장길 ‘건영피혁’ 건물을 317억 원에 매입했다. 평당 2억5000만 원 수준으로 당시 성수 최고가 거래로 화제가 됐다. 현재는 뷰티 브랜드 플래그십 매장으로 전환돼 운영되고 있다.
무신사는 2021년 3월 성수역 인근 소형 건물을 105억 원에 매입해 체험 편집숍 ‘엠프티(MPTY)’를 열었다. 이어 2022년 5월 옛 CJ대한통운 물류센터 부지를 460억 원에 매입해 2500평 규모 복합문화공간 ‘무신사 스토어 성수’를 개발 중이다. 2020년 12월 에는 옛 동부자동차서비스 부지를 220억 원에 확보해 본사 사옥 ‘캠퍼스 E1’을 마련했다가 2023년 8월 이 건물을 1115억 원에 마스턴자산운용에 매각한 뒤 재임차하는 세일앤리스백 거래를 통해 현금을 확보하면서도 거점을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와 화장품 브랜드 탬버린즈를 운영하는 아이아이컴바인드는 2018년 7월 성수동2가 부지를 509억 원에 매입하며 일찌감치 성수동 진출을 결정했다. 당시만 해도 성수동은 팝업스토어와 카페가 모여드는 신흥 상권이었지만 대규모 본사 사옥 개발을 전제로 한 대기업·소비재 기업의 투자는 드물었다.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부지 매입은 성수동이 브랜드 기업들의 장기 거점으로 부상하는 신호탄이 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 부지는 7년여간의 설계와 개발 과정을 거쳐 2025년 10월 신사옥 ‘하우스 노웨어 서울’로 재탄생했다. 외관부터 내부 공간까지 실험적 디자인을 적용해 건물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구현했고 젠틀몬스터·탬버린즈·향수 브랜드 어티슈(Artise) 등 자사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이 입주했다. 특히 하우스 노웨어는 매장 운영을 넘어 전시, 아트 프로젝트, 글로벌 협업 행사를 수용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설계돼 성수동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업계에서는 아이아이컴바인드가 보유 자산을 단순히 장기간 보유하기보다, 일정 시점에는 일부 부지를 매각해 투자금을 회수한 전례가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아이아이컴바인드는 성수동 외 지역에서도 부동산을 유연하게 매각·재투자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이에 따라 이번 신사옥 개발 역시 “단순 자산 보유”라기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필요할 경우 자산 유동화를 통해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신도리코는 지난달 성수동 토지와 건물을 2202억 원에 경매로 낙찰받았고 크래프톤은 2024년 12월 성수동 메가박스 스퀘어를 2435억 원에 매입해 신사옥과 브랜드 체험 클러스터 개발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처음에는 짧게 빌려 쓰는 팝업이 성수동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기업들이 아예 건물을 사들이거나 되팔면서 자산 전략과 브랜드 전략을 동시에 펼치고 있다”면서 “성수동은 더 이상 일시적 마케팅 무대가 아니라 브랜드 본진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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