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부동산시장, 노무현·문재인 정부 데자뷔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5일 1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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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수요 억제에 ‘정책 내성’ 강해지며 집값 폭등한 경험 재현 가능성

서울 서초구, 강남구 일대 아파트 단지. 뉴스1
집값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정부가 9월 7일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한 이후 오히려 아파트 가격 상승이 두드러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올해 집값 상승세가 지속된 서울 강남구는 지난해 말 대비 16.12% 올랐다. 서울 송파구(15.49%)와 경기 과천(15.14%), 서울 성동구(13.31%)가 뒤를 이었다.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상위 10개 지역 모두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금리인하와 강남권 재건축

집값 상승세는 서울 외곽이나 경기 성남 분당 등 수도권으로 번져 가는 양상마저 보인다. 정부가 ‘거주 목적 외 주택 매매 금지’ 등 추가 대책을 내놓을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따라 규제 발표 전 집을 사두려는 수요자가 몰려 서울 아파트시장은 혼란한 상황이다. 시장에선 이 같은 흐름이 일시적 상승에 그칠지, 지속적 상승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발(發) 무역 규제 등 글로벌 경기침체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가격 버블 붕괴 우려와 “서울 등 선호 지역의 신축 공급 위축으로 아파트 가격이 추가 급등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필자는 현재 부동산시장 상황이 노무현 정부 초기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 초기만 해도 강남과 비(非)강남, 서울과 지방의 부동산 가격차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그런데 2004년 다주택 양도세 중과 및 종합부동산세 등 강남권을 타깃으로 한 정책이 도입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아파트시장에서 기존 집을 팔고 강남권 등 서울 요지 1주택으로 갈아타거나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단순화하는 트렌드가 확산한 것이다. 금리인하로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지는 경제 여건, 강남 등 요지에 자리한 노후 대단지의 재건축 연한이 다가오는 상황도 노무현 정부 초기 같은 기시감이 든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도곡, 잠실, 반포 지역 저층 주공아파트 단지가 재건축 시기를 맞았다. 지금은 압구정 현대, 잠실주공5단지, 은마아파트, 목동 등 중층 대단지가 재건축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지역이나 규모 면에서 재건축 대상이 당시보다 확대된 것이다.

수요 억제와 강남권 족집게 규제에 나선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노무현 정부 때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정부 규제에 수요자들은 1주택 요건을 유지하는 가운데 입지 좋은 곳으로 갈아타는 ‘똘똘한 한 채’ 전략을 구사했다. 설상가상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례없는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6·27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은 전형적인 수요 억제 성격을 띤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 대출 한도 축소, 규제 지역 확대로 부동산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을 차단하겠다는 접근이다. 이는 과거 노무현·문재인 정부가 반복한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과 노무현·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 상승폭을 비교하면 어떨까. KB부동산 통계를 바탕으로 필자가 분석한 결과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각각 5년 동안 강남구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50% 내외였다. 올해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강남구 아파트값 상승률이 16%를 넘어서고 있다. 이 수치만 봐도 현 집값 상승세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전월세 올라 집값 본격 상승 우려

서울 강남구 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에 아파트 시세가 표시돼 있다. 뉴시스
당장 내년 주택 공급이 부족한 점도 우려스럽다. 올해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은 서울 2만9000채, 수도권 11만2000채 정도로 예상된다. 10년 평균치인 서울 3만8000채, 수도권 17만9000채를 밑도는 수치다. 특히 새 정부가 문재인 정부처럼 공공 중심의 주택 공급 정책을 채택할 경우 주요 지역의 재정비 사업 추진이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거주 목적 이외의 주택 구입 규제가 강화될 경우 적잖은 부작용이 예상된다. 갭투자 물량에 영향을 받는 중고 주택 임대차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전월세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전월세 가격이 크게 오르면 임대차시장의 대기 수요자가 매매시장으로 대거 진입할 공산이 크다. 실수요자의 부동산시장 진입으로 집값 본격 상승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부동산시장은 과거보다 복잡한 양상을 띤다. 우선 시장 참여자의 ‘정책 내성’이 강해졌다. 한국은행이 9월 25일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를 보자. 이에 따르면 과거 주요 부동산 대책이 나왔을 때 0.03%까지 떨어졌던 서울 아파트 가격 주간 상승률은 올해 6·27 대책 발표 후 10주가 지난 시점에 0.1% 수준을 유지했다. 반복된 규제 경험을 시장이 학습한 결과로 풀이된다. 부동산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이 크게 완화된 점도 최근 흐름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과 달리 현재는 일반인도 쉽게 시장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실시간 실거래가 정보는 물론, 유튜브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투자 정보 공유도 활발하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처럼 과도하게 오르는 강남 등 서울 선도 지역과 투자 수요를 타깃으로 한 규제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실수요자의 불안감을 키워 아파트 가격 상승이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규제 정책이 여러 차례 실패한 원인은 한국 부동산시장의 특성에 기인한다. 애초에 부동산은 투자재인 동시에 소비재라는 이중적 성격을 띤다. 단순히 정책 수단만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다. 또한 그 특성상 위치가 고정됐고 공급이 비탄력적인 것은 물론이다. 더욱이 한국은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과 일자리, 교육·의료 등 핵심 인프라가 편중돼 있다. 이런 다양한 구조적 문제를 풀지 않은 채 단순히 대출을 막거나 세금을 올리는 방식만으로는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09호에 실렸습니다〉

#부동산#집값#금리인하#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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