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년 전 고대 수메르 도시국가에도 이 세금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고대문명에선 이것이 공통적으로 있었죠. 조선시대에도 이 세금이 국가 재정의 중심이었고요. 지금도 극히 일부 국가(중동의 석유 부국 등)를 제외하곤 대부분 나라에 존재하는 세금. 바로 부동산 보유세(Property tax)입니다.
요즘 보유세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이게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는데요. 미국·영국·스위스 등 여러 나라에서 보유세가 이슈로 떠올랐죠. 도대체 보유세는 왜 이리 논쟁적일까요. 오늘은 논란의 세금, 부동산 보유세를 들여다보겠습니다.
10월 20일 서울 송파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 상가에 부동산 중개업소가 모여 있다. 양회성 기자
보유세. 말 그대로 부동산(주택, 토지 등)을 보유한 사람에게 부과되는 세금이죠. 보유세를 어떤 식으로 매기느냐는 나라마다 제각각인데요. 현재 한국의 보유세는 두 가지 형태입니다.
① 재산세: 주택·토지·건물 등 재산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내는 세금. 부동산이 있는 지역에 내는 지방세입니다. 집이 여러 채여도 이를 합산하진 않고, 각각 세금을 매기죠.
②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일정 금액 이상 고가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이 추가로 정부에 내는 국세입니다. 재산세와 달리 전국에 소유한 모든 주택 공시가격(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기준가격)을 합산해서 세금을 매기죠.
우리나라에 종합부동산세가 도입된 게 2005년. 이때 주택소유자에 부과하는 재산세의 과세 기준도 ‘면적’에서 ‘가격’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전까진 면적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지방 대형 평형 아파트가 집값 비싼 서울 중소형 아파트보다 재산세를 많이 내는 일이 벌어졌다고 해요.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2004년 대구 진로아파트 78평형(당시 기준시가 2억원) 재산세가 95만원, 서울 구의동 현대아파트 32평형(당시 기준시가 3억5000만원)이 18만원이었다는데요. 2005년의 보유세 개편으로 이런 역전 현상은 사라지게 됐습니다.
서울 부동산 시장 관련 단골 사진. 서울 송파구 롯데타워 전망대의 모습. 뉴시스‘조세 형평성’을 기준으로 보자면 이런 변화는 합리적이죠. 하지만 그 결과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 아파트까지 재산세가 급등하면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고요. 특히 종부세(당시엔 기준시가 9억원 이상이 대상)를 추가로 내게 된 서울 강남 아파트 소유자들 민심은 폭발합니다.
그럼에도 강남 집값이 다시 들썩이자, 당시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같은 추가 대책을 잇달아 내놨는데요. 거듭된 규제는 주택 공급 물량을 쪼그라들게 만들었고요. 그로 인한 결말-집값 폭등과 정권 교체-은 이미 아실 겁니다.
우리도 미국처럼? 그런데 요즘 미국은
20년이 지난 요즘, 다시 ‘집값을 잡기 위해 보유세를 올리자’는 얘기가 정부와 여당 곳곳에서 나옵니다. 그 주요 논리 중 하나가 이거죠. 미국은 집값의 1%를 보유세(재산세)로 부과한다.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0.16~0.2%)이 미국과 비교하면 너무 낮다는 겁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얼마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처럼 재산세를 (평균) 1% 매긴다고 치면 집값이 50억이면 1년에 5000만원씩 보유세를 내야 하는데, 연봉의 절반이 세금으로 나간다면 버티기 어려울 거다.”
사실 미국은 보유세율이 1%라는 얘기는 2005년에도 정부 관료들이 똑같이 했었습니다. ‘우리도 미국처럼’이 20년 동안 되풀이되는 보유세 인상론의 핵심 논지인데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요즘 미국에서 ‘재산세를 폐지하라’는 주장이 불붙고 있습니다. 조지아·뉴멕시코·콜로라도·인디애나·뉴저지·뉴욕주 의회는 재산세 감면안을 이미 통과시켰고요. 텍사스주 의회엔 2031년까지 재산세를 폐지하자는 법안이 공화당 소속 주 의회 의원에 의해 발의됐습니다. 미시간·오하이오주에선 시민단체들이 재산세 폐지를 위한 주민투표안에 서명을 받고 있고요. 플로리다주는 주택에 대한 재산세를 완전히 폐지하는 방안을 2026년 11월 투표에 부치기로 했는데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시 다운타운의 모습. 게티이미지재산세는 미국 주 정부 재정의 73%를 떠받치는 기둥인데, 이걸 폐지하자고? 이게 무슨 주 정부의 자살골 같은 주장인가 싶은데요. 재산세 폐지에 앞장선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주 주지사(공화당)는 이렇게 말합니다. “개인 주택은 정부로부터 임대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소유해야 합니다!” ‘내 집에 사는데 왜 월세처럼 재산세를 내야 하느냐, 이건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논리이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같은 주장입니다. “재산세는 사실상 당신의 집이 정부로부터 임대된다는 걸 뜻합니다.”
이걸로 알 수 있는 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보유세(재산세)를 싫어합니다. 2023년 미국의 전국 주의회 협의회(NCSL) 설문조사에서 재산세는 미국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세금’으로 꼽혔죠. 보유세는 다른 세금보다 더 강렬한 거부감을 일으키곤 합니다. 그 이유를 몇 가지 꼽아보면 이렇습니다.
①내가 얼마를 내는지가 너무 잘 보입니다. 보유세는 보통 1년에 한 번 일시불로 거액을 내죠. 그러다 보니 납세자는 본인이 보유세를 얼마 내는지 또렷이 알게 됩니다. 물건을 살 때마다 야금야금 떼어가는 소비세(부가가치세), 급여에서 아예 원천징수 되는 소득세보다 훨씬 잘 보이죠. 한꺼번에 몰아서 내기 때문에 금액도 커 보이고요. 부담스럽고 싫을 수밖에 없습니다.
②납세자가 세금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부가가치세를 적게 내고 싶다면 물건을 덜 사면 되죠. 소득세를 많이 내기 싫다면 누진세율 구간 이하로 소득을 맞추거나 비과세 투자상품을 이용해 절세를 할 수 있을 거고요. 하지만 보유세는 대체로 계획적으로 관리한다고 해서 줄일 수가 없습니다. 보유한 주택을 아예 팔지 않는 한 말이죠.
③납세 능력과 상관이 없습니다. 소득세는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끊기면 바로 제로가 되죠. 하지만 보유세는 소득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자산은 많지만, 세금 낼 소득은 부족한 상황에 처하는 이들이 많죠. 어느 나라나 부동산 소유자 중엔 은퇴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가 많다 보니 더 그렇습니다.
S&P 코털리티 케이스-쉴러 미국 전국 주택 가격 지수의 최근 10년 추이.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지난 5년 동안의 지수 상승률은 49.7%에 달한다. FRED그리고 보유세에 대한 반발이 바로 지금 미국에서 터져 나오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겁니다. 지난 몇 년간 집값이 너무 가파르게 올랐어요. S&P의 주택가격 지수에 따르면 미국 집값은 전국적으로 지난 5년 동안 49.7%나 급등했습니다. 연평균 8.37%씩 빠르게 상승한 건데요. 이렇게 주택가격이 급등하면서 세금 고지서 숫자도 함께 폭등했고요. 재산세에 대한 혐오가 분노로 바뀌며 폭발한 겁니다.
미국에서 부동산값 급등이 재산세에 대한 분노와 납세자 반란으로 이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70년대 미국 주택 가격은 무섭게 뛰었고요(1970~1978년 미국 주택 매매 중위가격 상승률 147%). 열받은 캘리포니아 납세자들이 들고 일어나, 1978년 주민발의안 13호를 통과시켰는데요. 재산세 부과 기준인 공시가격을 1975년 수준으로 되돌리고, 공시가 상승률을 연 2% 이내로 제한하는 법안이었죠. 기존 주택 소유자의 재산세 급등을 막는 이 법은 지금도 캘리포니아에 남아있습니다.
보유세는 경제 성장에 좋은 세금?
납세자들의 미움을 받는 보유세. 하지만 정부나 경제학자들이 보유세를 포기할 수 없는 건, 경제적으로 꽤 효율적인 세금이기 때문입니다.
세금을 늘리는 것 자체는 경제성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죠. 그럼 소득세, 소비세(부가가치세), 보유세. 이 중 가장 경제성장에 좋은(=덜 나쁜) 세금은? 바로 보유세라고 합니다. 이건 제 개인 의견이 아니라 여러 경제학 연구의 공통된 결론인데요.
IMF 보고서(2012년)에 따르면, GDP 대비 소득세 비중을 1% 포인트 줄이고 이를 소비세로 바꾸면 1인당 GDP 장기 성장률이 약 0.03%포인트 높아집니다. 그런데 소득세 비중 1% 포인트를 보유세로 전환하면? 1인당 GDP 성장률이 0.24%포인트나 높아진다고 하죠. 기왕이면 소득세·소비세보다 보유세로 세금을 걷는 게 경제성장 면에서 그나마 나은 선택이란 뜻인데요.
공시가격이 뛰면 보유세는 따라서 급등한다. 2024년과 2025년 서울 강남3구의 보유세(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모두 포함) 수준을 비교한 그래프. 동아일보DB왜 그럴까요. 보유세는 다른 세금에 비해 경제적 의사결정을 왜곡할 가능성이 작다는 게 특징입니다. 예컨대 근로소득세는 노동 참여, 양도소득세는 투자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죠. 소비세는 소비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고요. 이와 달리 보유세는 높인다고 해서 국가의 총 부동산 보유량이 줄어드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경제 성장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습니다.
또 다른 보유세 옹호론의 대표 주장은 보유세가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보유세를 많이 내는 건 아무래도 자산이 많은 부자일 테니까요. 집도, 땅도 없는 가난한 사람은 보유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을 거고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보유세와 관련해서는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서는 법입니다. 집 있는 자는 보유세 폐지나 감면을, 집 없는 자는 보유세 강화를 외치는 게 당연하죠. 그럼 주택 보급률이 낮은 나라에서 보유세 폐지를 국민투표에 부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지난 9월 말 스위스에서 벌어진 일인데요. 스위스는 유럽에서 주택 소유율이 가장 낮은(43%) 나라죠. 이런 스위스가 1934년부터 이어진 재산세의 일종인 ‘귀속 임대가치’ 세금 폐지안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는데요. 57.7% 찬성으로 폐지가 결정되는 깜짝 결과가 나왔습니다. 주택소유자의 재산세를 깎아주자는 법안을 세입자들도 상당수가 지지한 셈이죠.
스위스 취리히 시내 비데콘 지역. 게티이미지이런 의외의 결과는 스위스의 귀속 임대가치(자가 거주자가 집을 임대한다고 가정하고 매긴 가상의 임대료) 계산 방식이 너무 복잡해서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이 지난 수십 년 동안 퍼졌기 때문이라는데요. 물론 그 혜택은 스위스 집주인들에게 오롯이 돌아갈 겁니다. 이로 인해 이미 버블 조짐이 있는 스위스 주택 가격이 더 뛸 거란 전망도 나오죠.
영국에선 집값 0.5% 보유세 논의
반대로 보유세를 신설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나라도 있습니다. 바로 영국인데요. 재정난에 시달리는 영국은 증세가 시급한 상황이죠. 그래서 영국 정부가 검토하는 방안 중 하나로 ‘비례재산세’ 도입이 거론되는데요.
영국엔 재산세 성격의 지방세가 있습니다. 1991년 주택 가격을 기준으로 매긴 8개 등급에 따라 차등 부과하는데요. 문제는 그동안 일부 지역 집값이 몇 배로 뛰었는데 등급은 그대로라는 거죠. 수백만 파운드짜리 웨스트민스터 저택의 지방세가 영국 북부 평범한 주택보다 더 적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엉터리 지방세 대신 모든 부동산의 가치를 매년 평가해 일률적으로 0.48%를 재산세로 물리자는 ‘비례재산세’ 도입 캠페인이 한창입니다. 이들은 대신 지방세와 함께 주택 구매자가 내는 인지세(한국의 취등록세에 해당)까지도 없애자고 주장하죠. 거래세(인지세)는 낮추고 대신 보유세(재산세)를 올리면, 자연히 주택 거래가 살아나고 그럼 심각한 주택 공급난도 좀 트이지 않겠냐는 발상입니다. 논리적으론 그럴듯해 보이는데요.
영국 런던 시내 중심가 모습. 게티이미지하지만 이런 급진적인 세제 개편을 과연 누가 해낼 수 있을까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인데 말이죠. 비례재산세 신설에 언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고요. 가뜩이나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 중인 노동당 정권이 감당하기엔 정치적 위험 부담이 너무 커 보입니다.
결국 모든 세금이 그렇듯 보유세 역시 정치의 문제입니다. 어떤 방향이든 보유세 개편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으니까요. 1970년대 미국 상원 재정위원장을 지낸 러셀 롱 상원의원이 남긴 유명한 말이 떠오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건 ‘조세 회피’입니다. 당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그건 ‘세금 개혁’이죠.” 보유세 인상과 인하, 당신에겐 어느 쪽이 세금 개혁인가요? By.딥다이브
예전에 영국인이 가장 혐오하는 세금이 상속세라는 얘기를 전해드렸는데요(딥다이브 상속세 편). 미국은 그 타이틀이 재산세에 있다니 흥미롭습니다. 한국에서도 설문조사를 한번 해보고 싶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인류 문명과 함께 탄생한 보유세. 한국에선 2005년 종합부동산세 도입으로 한차례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는데요. 20년이 지나 다시 보유세를 올리자는 논의가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혹자는 미국처럼 보유세가 집값의 1%는 돼야 한다고 주장하죠. 그런데 정작 요즘 미국에선 재산세를 감면하거나 아예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보유세는 특유의 가시성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하고요. 특히 집값이 급등하는 부동산 버블기엔 납세자들의 분노를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보유세는 국가 경제 측면에선 가장 덜 나쁜 세금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보유세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죠.
-최근 스위스는 91년 동안 유지된 재산세의 폐지를 국민투표로 결정했습니다. 반면 재정난이 심각한 영국에선 집값의 0.48%를 부과하는 비례재산세를 신설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지죠. 어느 방향이든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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