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과학자’ 신설, AI인재 유출 막는다]
학계 “韓 年1억, 석학 잡기 역부족… 뒷방 늙은이 취급, 정년 해제해야”
이민자에 빗장 걸어잠그는 미국도, 과학자에 영주권 발급 등 유치 경쟁
“최근 친분이 깊은 중국 내 ‘원사(院士)’의 초청으로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중국 원사는 공항에서 VIP 전용 통로로 들어가고, 정부로부터 주택을 받습니다. ‘국보급 인재’라는 명예에 연구 지속성도 보장됩니다. 연 1억 원의 지원금으로는 국내 석학을 잡아 두기 부족해 보이네요.”
2006년 정부가 선정한 ‘국가석학’을 지낸 서울 사립대 교수 A 씨는 7일 공개된 ‘국가과학자’ 제도 신설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이 제도는 중국공학원이 지정하는 원사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지만 현장에선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반응이 나온다.
KAIST 공대 소속의 B 교수는 “국가과학자라는 명예는 가질 수 있겠지만 연 1억 원의 연구 지원금은 솔직히 별 메리트가 없다”며 “중국이 수억 원의 연봉에 주택, 자녀학자금까지 제공하는 것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중국은 원사가 된 과학기술자들에게 국가가 차관급 대우를 해 준다. 정년 없는 연구활동과 연구비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한다.
이제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AI·계산과학실장은 “한국 국가과학자로 선정될 정도의 실력이라면 연 1억 원의 연구지원비는 아쉽지 않을 것 같고, 지금 연 20명인 선정 인원을 줄이더라도 1인당 10억 원 이상의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특히 학계에선 국내 석학에 대해 파격적인 ‘정년 해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평생 쌓아 올린 연구를 계속하고 싶지만 65세인 정년이 임박하면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국내 과학계 분위기에 원로 과학자들이 외국행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의 해외 석학 유치 프로그램인 ‘브레인풀 플러스(BP+)’ 관련 설명회에서도 정년 해제를 해준다면 미국 등 해외에서 한국으로 연구 거점을 옮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서울대가 올 8월에 황윤재 경제학부 교수와 현택환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를 특임석좌교수로 임용한 바 있다. 특임석좌교수는 정년으로 인한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전임교원이 정년퇴직일 이후부터 5년, 이후 성과 평가를 거쳐 75세까지 한 번 더 재임용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후속 과학기술인재 대책과 관련해선 이번처럼 AI에 국한하는 대신 전체 과학 분야를 아우르는 융합형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정부가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 생태계 혁신을 강화하려는 방향은 긍정적이지만, AI 과학영재학교 설립은 빠른 전공 특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융합적 사고를 키우려면 폭넓은 학습과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지원은 현재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민자에게 빗장을 걸어잠그고 있는 미국도 과학기술 인재에게만은 문호를 지속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검증된 과학기술자에 대해 영주권이 있는 비자(EB-1A)를 발급해 주고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등 이른바 ‘스템(STEM)’ 학과 전공 졸업자들에게는 ‘체류 후 실습허가제’를 운영해 비STEM 전공자보다 더 긴 체류 기간을 제공하거나 일부 취업을 허가해 준다.
2010년 이후 과학기술 분야가 약세로 돌아섰다는 평가를 받았던 일본도 ‘재기’를 위해 과학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총 10조 엔(약 95조 원)규모의 ‘대학 펀드’를 조성해 학교별로 수백억 엔씩을 연구 기금으로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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