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전기생활’로 에너지 위기 넘어야[기고/정연제]

  • 동아일보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중동 분쟁 장기화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전력 생산 원가와 직결되는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요동치면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현 상황을 1970년대 오일쇼크보다 더 심각한 위기라고 진단했다. 최근 주유소 앞에 늘어선 긴 차량 행렬은 우리가 직면한 에너지 안보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자원안보 위기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하고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에너지 다소비 기업에 절감을 독려하고,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2400만 배럴의 원유를 확보하는 등 공급망 안정화에 주력하고 있다. 바라카 원전 건설로 쌓아온 신뢰가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안전판이 된 셈이다. 하지만 공급망 확충만큼 중요한 것이 소비 현장의 변화다. 정부가 ‘에너지 아껴 쓰기’를 호소하며 국민적 동참을 요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발적 에너지 절약의 위력은 이미 수치로 증명됐다. 대표 사례인 한국전력의 ‘주택용 에너지 캐시백’을 통해 지난해 337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전력을 절감했다. 인구 20만 명인 충북 충주시 전체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에너지의 94%를 수입하는 우리나라에서 ‘절약이 곧 제3의 에너지원’이라는 점이 실증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할 도구가 에너지 절약 통합 플랫폼 ‘슬기로운 전기생활’이다. 올해 3월 개설된 이 플랫폼은 흩어져 있던 39종의 전력 정보를 통합 제공한다. 사용자들은 단순히 전기를 아끼는 것을 넘어, 자신의 소비 패턴에 맞는 요금제를 선택해 합리적인 소비를 실천할 수 있다.

나아가 플랫폼은 생산과 거래 영역까지 확장된다. 태양광 발전 시설 설치 시 예상 수익을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고, 전력 공급 과잉 시간대에 소비를 늘려 인센티브를 받는 등 수요 반응(DR) 시장에 개인이 직접 참여할 수 있다. 소비자가 수동적인 사용자에 머물지 않고 전력 계통 안정화에 기여하며 수익까지 창출하는 ‘에너지 프로슈머’로 진화하는 기반이 된다.

에너지 절약에는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도 필수적이다. 소상공인, 뿌리기업 등이 노후 설비를 고효율 기기로 교체할 때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고효율 기기 지원 제도’는 중요한 에너지 복지다. 기기 효율 개선은 개별 경제주체의 부담을 줄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발전소와 송전망 건설 수요를 억제해 막대한 국가적 편익을 창출한다.

에너지 위기는 정부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 참여형 플랫폼을 통해 개인의 절감 노력이 데이터화되고 실질적인 보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 국민 모두가 에너지 소비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 요동치는 글로벌 에너지 파고를 넘어 안정적인 에너지 안보 환경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중동 분쟁#글로벌 에너지 시장#액화천연가스#국제에너지기구#슬기로운 전기생활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