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은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수술 가능한 초기 췌장암이 전체 환자의 20% 수준으로 알려질 만큼 조기진단이 어렵다. 예후도 안 좋다. 5년 생존율이 10%대에 불과하다. 암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유형 중 하나로 꼽힌다.
췌장은 소화 효소와 혈당 조절 호르몬을 생성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발병 원인 중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은 불변 요인은 유전적 소인과 노화가 대표적이다. 조절 가능한 요인으로는 흡연, 비만 및 비만 관련 대사 이상, 만성 췌장염, 제2형 당뇨병, 붉은 고기·가공육·고온 조리 음식과 같은 식이 습관 등이 꼽힌다.
여기에 하나가 추가됐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료이자 가장 사랑하는 음료, 바로 술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 암연구소(IARC)는 최근 국제 학술지 PLOS 의학(PLOS Medicine)에 발표한 최신 연구에서 알코올이 췌장암 위험을 증가시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IARC는 알코올을 1급 발알 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 공중보건 최고책임자는 지난 1월 알코올이 유방암, 대장암, 식도암, 후두암, 간암, 구강암, 인후암의 7가지 암 발병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여기에 췌장암을 더해야 할 것 같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IARC 영양·대사 분과 책임자이자 이번 논문의 교신 저자인 피에트로 페라리(Pietro Ferrari) 박사는 “알코올은 확인된 발암 물질이지만, 지금까지 알코올과 췌장암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확실하지 않았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췌장암이 알코올 섭취와 관련된 또 다른 유형의 암일 수 있다는 새로운 증거를 제시한다. 이러한 연관성은 지금까지 과소평가되어 왔다”라고 연구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진은 아시아, 유럽, 북미, 호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중위 연령 57세의 250만 명을 약 16년 동안 추적 관찰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췌장암 발병 사례는 1만 67건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 섭취량이 하루 10g(순수 알코올 양) 증가할 때마다 췌장암 위험이 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 대상은 비음주자가 아닌 가벼운 음주자(하루 0.1~5g 미만)이었다.
알코올 도수 4.5%인 맥주 한 캔(500㎖)의 알코올 양은 18g, 알코올도수 17%인 소주 한 병(360㎖)의 알코올 양은 약 49g이다. 따라서 알코올 10g은 맥주 반 캔, 소주 4분의1 병(약 1.75잔)에 해당한다.
하루 15~30g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여성은 췌장암 위험이 12% 증가했다. 하루 30~60g 섭취하는 남성은 15%, 하루 60g 이상의 알코올 섭취 남성은 췌장암 위험이 36%로 껑충 뛰었다.
페라리 박사는 “알코올을 섭취하는 사람 중 다수가 흡연을 함께 하기 때문에 흡연이 이러한 연관성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의심이 있었다”며, “그러나 비흡연자를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도 알코올과 췌장암 위험 간의 연관성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알코올 자체가 독립적인 위험 요인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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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종별 차이도 있었다. 맥주와 증류주는 췌장암의 위험요인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와인은 유의미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알코올 대사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췌장암에 더욱 취약할 수 있다. 특히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알코올 대사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 효소인 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ALDH) 결핍 확률이 높다. 이러한 유전적 변이는 아시아인에게 특히 흔한 것으로 알려졌다. ALDH 효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알코올의 독성 부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체내에 축적된다.
발암 물질인 알코올은 염증, 산화 스트레스, 자유 라디칼 생성, 미생물 군집 불균형, DNA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췌장 세포 손상과 췌장 섬유화를 유발하여 췌장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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