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회장에게 운동은 생존 수단… 아무리 바빠도 안 걸러”

  • 주간동아
  • 입력 2025년 10월 7일 0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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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전문 트레이너 조영기 씨 “재벌은 근육질 몸매보다 균형 잡힌 일상 더 중시”

바쁠수록 운동이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진짜 바쁜 재벌에게 운동은 생존이다. 돈만큼이나 체력이 중요하고 이를 지키는 일이 곧 기업 성과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재벌만큼 돈은 없어도, 그들만큼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가장 가까이서 재벌의 운동을 도운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영기 씨는 24년 차 VVIP 전문 퍼스널트레이너다. 국내 3대 재벌 회장 중 두 사람을 각각 10년, 13년간 전담했다. 그는 단순히 운동 코치가 아니었다. 회장의 일정을 그림자처럼 동행하고, 때로는 심리상담사 역할까지 맡았다. 그가 곁에서 본 재벌들은 근육질 몸매보다 균형 잡힌 일상을 더 중시했다. 회장과 오랜 시간을 독대한 조 씨는 그들의 숨 가쁜 하루와 치열한 자기관리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현재는 서울 압구정동에서 프리랜서 트레이너로 활동하는 그는 자산 수천억 원대 기업인과 고위 공무원을 상대로 맞춤형 지도를 이어가고 있다.

24년 차 VVIP 전담 트레이너인 조영기 씨. [조영기 제공]
24년 차 VVIP 전담 트레이너인 조영기 씨. [조영기 제공]

집무실 앞엔 헬스장, 운동은 우등생처럼

“회장님 출발하십니다.” 드라마에서 본 장면처럼 재벌의 하루는 일사불란하다. 사저 현관을 나오면 운전기사가 차를 대기하고 있고, 비서가 차 문을 연다. 동시에 수행비서는 회사에 연락해 일정을 준비한다. 사옥에 도착하면 바로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곧장 집무실로 들어가면 임원들의 보고 릴레이가 시작된다. 조 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회장이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헬스장 문 앞에서 기약 없이 대기해야 했다. 어렵게 운동을 시작해도 문밖에는 보고할 사람이 줄지어 기다렸다. 운동 중에도 “운동을 빨리 끝내 달라”는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재벌은 늘 운동이 뒷전으로 밀릴 상황에 놓인다. 그렇다면 운동을 피하는 사람은 없었을까. 조 씨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회장은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재벌에게 운동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회사 성과와 주가가 회장의 건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회장은 출근과 동시에 운동을 시작해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했다. 집무실 바로 앞에 전용 헬스장을 지었을 정도로 운동에 진심이었다. 빡빡한 출장 일정에도 트레이너를 동행하게 해 반드시 운동 시간을 마련했다. 그러다 보니 회장들은 웬만한 젊은 비서보다 체력이 좋았다. 바쁜 일정 탓에 양복이 땀에 젖어 몇 번씩 갈아입어도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조 씨는 “재벌은 운동을 ‘우등생’처럼 한다”고 말했다. 운동 경력만 35년인 조 씨는 회장의 숨소리와 땀방울만 살펴도 체감 운동 강도를 알 수 있다. “힘들면 강도를 낮출까요”라는 질문에 회장들은 늘 손사래를 쳤다. 다음 날 계단을 절뚝거리며 내려올 만큼의 고강도 운동을 군말 없이 해냈다. 예순이 훌쩍 넘은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피곤함을 견디는 힘이 결국 운동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재벌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고강도 운동은 금물”
조 씨는 스스로를 ‘그림자’라고 소개했다. 회장의 일정을 그림자처럼 동행하며 건강과 관련된 디테일을 챙기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예를 들어 제주로 출장을 가면 그는 숙소와 헬스장을 모두 세팅했다. 운동화와 양말, 속옷부터 매트까지 꼼꼼히 준비했고 야외 운동에 대비해 선캡·선크림·반창고도 종류별로 갖췄다. 물도 2병 준비했다. 왼쪽엔 얼음물, 오른쪽엔 정수물. 회장이 운동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그의 임무였다. 비서 사이에서는 “조 씨만큼 회장을 오랜 시간 독대하는 사람도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 곁을 지키다 보니 가족 같은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어떤 회장의 부인은 조 씨의 부모 집에 하루 묵으며 식사를 함께했다. 조 씨의 어머니는 씨암탉을 잡아 대접했고, 휴대전화로 회장 일가와 같이 사진도 찍었다.

물론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A 회장과 제주 올레길을 걷던 날이다. 날씨를 확인하고 전날 답사까지 마쳤지만 예기치 못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회장은 우산과 우비를 마다하고 빗길을 걸었다. 그러다 미끄러운 진흙 길에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하얀 바지가 순식간에 흙투성이가 됐다. “길이 미끄러울 것 같으면 다른 신발을 준비했어야지”라는 꾸중이 날아왔다. 잔뜩 화가 난 회장은 먼저 차를 타고 돌아갔고, 조 씨는 혼자 숙소로 걸어왔다. 꼼짝없이 잘리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행히 그날은 비서실장에게 불려 가는 정도로 끝났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하다고 조 씨는 전했다.

운동 중 회장의 돌발 질문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B 회장은 운동을 한창 하다가 조 씨에게 무슨 화장품을 쓰느냐고 대뜸 물었다. 자신이 쓴 화장품을 마음에 들어 하는 줄 알았던 조 씨는 호텔 어메니티 제품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돌아온 반응은 10년간 한 번도 듣지 못한 호탕한 웃음이었다. B 회장은 “그게 아니라 향이 너무 강하다”며 웃었다. 그날 이후 그는 회장과 운동할 땐 무향 베이비로션만 바른다.

회장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조 씨는 ‘체력 경영’이 재벌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했다. 일반인도 실천 가능한 원칙이 있다. 조 씨는 “처음부터 고강도 운동으로 시작하지 마라”고 조언했다. 우선 20분간 가볍게 걸어 땀이 살짝 날 정도로 몸을 푼다. 그다음에 스트레칭을 하면 피로가 줄 뿐 아니라, 몸이 좋은 감각을 기억해 운동이 즐거워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식사법으로는 ‘333 전략’을 소개했다. 견과류와 과일·채소를 하루 3번 나눠 먹고, 물도 3컵, 3번 이상 마시는 단순한 습관이다. 조 씨는 최고 장비나 전문가가 없어도 괜찮다고 조언했다. 건강을 자산으로 여기고, 짧은 시간이라도 운동을 습관화하려는 태도. 그것이 조 씨가 곁에서 관찰한 재벌들의 체력 경영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중대한 협상을 앞두고도 회장들은 운동을 빼먹지 않았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09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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