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불법 체류자 체포에 반발하는 시위대의 방화로 불타는 차량을 소방대가 진화하고 있다. 2025.06.08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세계 최대 코리아타운이 자리 잡고 있으며 중남미와 아시아계 이민자가 많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과 불법 체류자 체포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가 6, 7일(현지 시간) 벌어졌다. 불법 이민 단속 요원들이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최루탄 등을 발사했고 도심 곳곳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50개 주 중 야당인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백악관은 “시위 진압을 위해 주(州) 방위군 2000명을 투입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이번 시위로 체포된 한국 교민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교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여론조사 회사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한국 교민 약 180만 명 중 29%(약 53만 명)가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있다. 이 중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한인 교민만 32만 명에 이른다.
일각에선 흑인 남성 로드니 킹 폭행 사건이 촉발한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당시 코리아타운에서 대규모 약탈 사태가 발생했듯 교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위대는 8일에도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예고했다.
● 도심 전체에 최루가스 가득
이번 시위는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단속국(ICE)이 6일 로스앤젤레스 도심의 ‘자바 시장’으로 불리는 의류 도매상가, 한인타운 인근에 있는 홈디포 매장 앞 등에서 대대적인 불법 이민자 단속에 나서면서 촉발됐다. 이 시장의 이름은 일용직을 뜻하는 ‘자버(Jobber)’에서 유래했으며 교민들을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가 많이 이용한다. 홈디포 역시 일용직 일자리를 구하려는 라틴계 불법 이민자들이 자주 찾는 장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7일 중 약 120명의 불법 이민자가 체포됐다.
7일(현지 시간) 일부 시위대는 ICE 차량을 발로 차며 당국에 항의 의사를 표했다.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대규모 단속 및 체포에 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대 시위로 맞섰다. 체포된 이민자들이 구금된 것으로 전해진 구치소 건물 앞에서 시위대가 무장한 ICE 요원 및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는 화염병으로 추정되는 유리병과 돌을 던졌고, 당국은 섬광탄과 공포탄 등을 발사하며 맞섰다. 최루가스를 맞은 시위대가 눈과 얼굴을 씻으려고 우유를 들이붓는 모습도 포착됐다.
● 주지사 요청 없는 주 방위군 투입으로 논란 커져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트루스소셜에 “민주당의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이 시위를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대통령이 주 방위군 2000명을 투입하는 각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해당 주지사의 요청 없이 주 방위군을 투입하는 것은 1965년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민권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앨라배마주에 주 방위군을 투입한 후 60년 만이다. NYT에 따르면 로스앤젤레스 당국은 7일 “주방위군이 24시간 안에 도착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또한 “폭력이 계속된다면 해병대원도 동원하겠다”고 공개했다.
7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무장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규모 불법이민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한 남성의 손을 뒤로 묶은 채로 끌고 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트럼프 대통령의 주 방위군 투입 결정을 두고 법에 어긋나는 조치란 지적이 나온다. 법에선 ‘반란이나 반란 위험이 있을 때 주 방위군을 투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현재 상황이 그 정도로 위험한 상황은 아니란 것.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로스쿨의 어윈 체머린스키 학장은 “정부가 반대 의견을 막으려고 국내에서 군대를 동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뉴섬 주지사도 “주 방위군 투입이 긴장만 더 높일 것”이라고 맞섰다.
● 한인 피해 보고는 없지만 ‘단속 증가세’
주로스앤젤레스 한국 총영사관 관계자는 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단속에서 교민, 한국 국적자가 체포돼 영사 면담을 요청했거나 본인 및 주변인이 체포 사실을 영사관에 알린 사례는 없다. 현지 한인회에서도 아직 파악된 바가 없다”고 전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올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진 영사 면담을 요청한 사례가 2년여간 1건뿐이었지만 올해는 벌써 4, 5건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당사자가 면담을 원치 않는 사례를 포함하면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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