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백악관에서 열린 서명식에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서명한 트럼프 대통령.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담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이 3일(현지 시간) 상원에 이어 하원을 가까스로 통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립기념일(4일) 이전 통과를 강력하게 추진했고, 결국 성공했다. 대규모 감세안부터 의료 보험 예산 감축, 재생 에너지 보조금 삭감, 이민 단속 예산 및 국방비 증액 등 각종 국정과제를 한 데 엮은 이 법안을 두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온갖 지원금과 감세, 특혜를 덕지덕지 붙인 프랭켄슈타인과 같다”고 평했다.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의 탄생 과정과 주요 내용 및 향후 정치권에 미칠 영향을 살펴봤다.
● 중간선거를 위한 디딤돌
집권 1기 출범 직후에도 연방 의회 상황은 현재와 비슷했다.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호 법안인 ‘트럼프케어(미국건강보험법)’가 하원 첫 표결을 앞두고 무산되자 급속히 정책 추진력을 잃었다.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도 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이 반대표를 던지며 상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의회 우회에 나섰지만 국정 운영 전반이 삐걱였다. 결국 이듬해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민주당에 빼앗기는 패배를 맛보았다.
집권 1기 당시의 실패를 본보기 삼아 지난해 11월 5일 대선 승리 직후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망라한 ‘메가 법안’의 통과 전략을 두고 논쟁이 오갔다.
하원의 초강경 우파 의원 모임 ‘프리덤 코커스’는 “불법 이민자 단속과 추방을 위한 대규모 예산 편성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민 관련 예산만 따로 떼서 먼저 통과시키는 투트랙 전략을 주장했다. 메가 법안 통과를 수개월씩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프리덤 코커스는 올 1월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재선출 당시 항의 표시로 찬성표를 던지지 않고 버텼다. 다만 플로리다주 사저 마러라고에서 머물던 트럼프 대통령(당시 당선인)이 직접 전화를 걸어 “일을 더 오래 끌지 말자”고 하자 즉각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긴 했다.
3일 하원에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 통과후 공화당 의원들과 악수하며 환하게 웃는 존슨 하원의장. 워싱턴=AP 뉴시스액시오스에 따르면 존슨 의장은 재선출 이틀 전 마러라고에서 트럼프 대통령, J D 밴스 부통령 등과 회의를 갖고 일괄 통과와 투트랙 전략의 장단점을 두고 토론했다. 이 자리에서 존슨 하원의장은 “큰 거래에서는 누구나 불만 하나쯤을 갖게 마련이지만, 좋아할 만한 게 더 많아 결국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며 일괄 통과를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일괄 통과를 원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존슨 의장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지원 사격에 나섰을 수도 있다.
재선출 다음 날 존슨 의장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의 추진 계획을 공화당 하원의원 비공개 회동에서 공개했다. 당시 액시오스는 “광범위한 합의가 필요해 빨라도 6월에야 통과될 거란 전망이 나오며 의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 법안의 주요 내용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는 무슨 내용이 담겼을까. 이 법안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정책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올해 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개인 소득세율 인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주·지방세(SALT) 공제 한도 인상 등 광범위한 감세 조치가 영구화된다. 또 유세 기간 공약했던 팁과 초과 근무수당에 대한 면세 조치 또한 담겼다.
강경 이민책을 뒷받침할 예산도 대거 책정됐다. 국경 안보에 170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으로 미국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에 465억 달러, 구금시설 10만 개 확충에 45억 달러 등이 배정됐다.
국방비 또한 큰 폭으로 늘게 된다. ‘골든 돔’ 미사일 방어 시스템 구축(250억 달러), 인공지능(AI) 기술 도입(160억 달러), 핵 억지력 강화(150억 달러), 인도태평양 지역 전력 강화(120억 달러) 등을 위해 1500억 달러의 예산이 증액됐다.
연방정부 부채한도는 5조 달러로 상향된다. 정부 폐쇄(셧다운) 파행을 막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강조했던 사안이다. 또 ‘트럼프 계좌’를 신설해 자녀 출생시 1000달러 예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4일 백악관에서 서명식 행사를 연 트럼프 대통령. 워싱턴=AP 뉴시스 반면 메디케이드(취약계층 공공의료 보조), 푸드 스탬프(저소득층 식료품 지원) 등 복지 예산은 1조 달러 이상 삭감됐다. 의회예산국(CBO)는 이 법안으로 10년간 정부의 의료비 지출은 1조1000억 달러 이상 삭감되고 2034년까지 의료보험이 없는 미국인이 1180만명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재원 마련을 위해 사회 취약계층을 희생시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도입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근거로 한 청정에너지 세액공제도 조기 폐지된다.
각종 삭감 조치에도 재정적자 확대는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CBO는 연방 적자가 2034 회계연도까지 3조3000억 달러 이상 늘어날 수 있다고 추산했다.
● 엄혹한 내부 단속
법안에 반대한 공화당 의원은 상·하원을 통틀어 단 5명뿐이었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가할 정치적 보복이 두려워 내린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얻지 못한 정치인이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자격을 얻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트루스소셜과 연설을 통해 반대자를 거침없이 모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상 일단 낙선 운동의 표적이 되면 맞서기 어렵다.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을 두고는 톰 틸리스 상원의원(65)이 반대표를 던진 뒤 중간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를 대표하는 틸리스 상원의원이 은퇴를 선언하자 “트럼프에 맞서다 경합주의 유망한 재선 상원의원이 이른 은퇴를 하게 됐다”는 말도 나왔다. (119대 상원 평균 연령은 64.7세, 최고령자는 그래슬리 상원의원(92)이다.)
지난달 30일 의사당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틸리스 의원. 워싱턴=AP 뉴시스트럼프 대통령은 표결을 앞두고 트루스소셜에 장문의 글을 여러 차례 올리며 틸리스 의원을 압박했다. 그는 “세금을 올리고, 노스캐롤라이나의 담배 산업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자 하는 심산”이라며 “중간선거 앞두고 주목을 받으려는 상원의원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틸리스 의원을 두고 “가격도 비싸고 경관을 해치는 중국산 풍력 발전기를 사랑하는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그의 뜻대로 틸리스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좋은 소식”이라며 또 한번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렸다. 틸리스 의원의 자리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며느리 라라 트럼프, 리처드 허드슨 하원의원, 패트릭 해리건 하원의원 등의 출마설이 제기되고 있다고 NBC방송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에 의사당을 떠난 정치인은 틸리스 의원뿐만이 아니다. 2021년 1·6 의사당 난입 사건 직후 발의된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한 공화당 하원의원 10명 중 2명 만이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을 상대로 공개 비난을 이어가고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에 친트럼프 정치인을 내보내 낙선 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표결에서도 상원 53명, 하원 220명의 공화당 소속 의원 중 단 5명(상원 3명, 하원 2명) 만이 반대표를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약한 고리를 노려 당내 기강을 잡았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신 투표’를 한 의원을 모두 공격하지는 않았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은 의원들은 민주당 강세 지역구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콜린스 의원은 2021년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상원의원 7명 중 하나로, 상대적으로 민주당 성향인 메인주를 대표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괜한 싸움은 피하고 실적을 관리하는 전략적 침묵을 선택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 자칫 중간선거 자충수 될까 우려
법안이 통과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주어진 “선물”이라며 극찬했다. 그러나 법안이 가져다 줄 정치적 득실을 두고는 계산이 엇갈리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법안이 연방 의회 문턱을 넘은 이듬날 4일부터 7일까지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유고브가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3%가 법안에 반대했다. 법안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35%에 그쳤을 정도로 유권자 반응이 부정적이다. 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 법안에 불만을 품고 새로운 정당 창당을 선언하는 등 각종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초조해진 공화당은 감세 등 인기 조항을 위주로 홍보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액시오스는 “공화당 지도부는 유권자가 법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내년 중간선거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민주당은 유권자들이 의료 보험 혜택을 잃게 되는 점을 집중 공략할 전망이다.
4일 서명식에서 법안에 서명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보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공화당 의원들. 워싱턴=AP 뉴시스공교롭게 틸리스 의원 또한 의료 예산 삭감을 이유로 법안에 반대했다. 지난달 28일 틸리스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한 당일 상원 본회의장에 등장했다. 12분 간의 발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메디케이드를 지키겠다”고 유권자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며 자신이 반대표를 던진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잘못된 조언을 받고 있고, 독립기념일(7월 4일) 이전에 통과시키기 위해 졸속 처리를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틸리스 의원의 연설은 다음과 같았다.
“대통령님,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반대표를 던진 제 결정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저는 대부분의 경력을 대형 프로젝트를 다루는 경영 컨설팅에서 보냈습니다. 그 경험을 입법부로 가져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회에서 주정부 지출 감축 작업을 이끌었습니다.
제가 이 사례를 드는 이유는, 메디케이드 개편안에는 신중함이나 절차적 성실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법안에는 의료공급자세 삭감(병원 보조금 축소)이 수급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통찰이 부족합니다. 더 나아가 대부분 의원들은 주정부 보조금 체계와 그 재정 흐름이 초래할 파괴적인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저는 이 법안이 노스캐롤라이나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공화당과 민주당, 비당파 성향의 병원협회까지 총 세 그룹에 독자적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최선의 시나리오에서도 약 260억 달러의 삭감이 발생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저는 분석을 백악관과 행정부에 제출해 회의를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들이 제 분석을 반박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저의 추정치가 맞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들은 제게 말하길 “의료공급자세 제도를 활용해온 노스캐롤라이나가 알아서 감내하라”고 했습니다.
대통령님, (의료공급자세 삭감으로 인한 예산 고갈의 여파로) 2~3년 뒤 (노스캐롤라이나주 시민) 66만3000명을 메디케이드에서 탈락될 때 저는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을 어겼다고 해야 합니까?
백악관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이 법안이 약속을 어기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7월 4일이라는 인위적 기한에 쫓겨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멈춰서서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드는 데 시간을 써야 할 때입니다.
대통령님, 우리는 주정부에 이 법안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제대로 파악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저는 해냈습니다.
대통령님, 저는 이 법안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압니다. 복잡한 시스템을 관리했던 경험도 있고, 주의회 하원의장으로서 실제로 그것을 실행해 본 적도 있습니다.
대통령님, 우리는 미국 국민에게,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주민에게 우리가 약속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증명할 때까지 찬성표를 보류해야 합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저도 찬성할 수 있는 법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저는 제 표를 보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2화 요약: 감세와 이민·국방비 증액 등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공약들을 묶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이 독립기념일 전날 미 연방 의회를 통과하며 입법에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내부 단속에도 5명의 의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의료 예산 삭감을 이유로 끝까지 저항한 톰 틸리스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에 끝내 불출마를 선언했다. 법안 통과 이후에도 각종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법안이 중간선거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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