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과거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저질러 체포됐 월가 부호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외설스러운 그림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WSJ) 소속 기자가 21일 백악관 해외 출장 취재단에서 제외됐다.
21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25일부터 3박 4일 간 스코틀랜드를 방문하는 일정과 관련해 동행 취재단에 WSJ 소속 기자를 제외하겠다고 전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정치매체인 폴리티코에 보낸 성명을 통해 “WSJ과 다른 어떤 언론사도 오벌오피스(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에어포스원(대통령 전용기), 대통령의 사적 업무공간 취재를 위한 특별 접근권을 보장받지 않는다”며 “WSJ은 허위, 명예훼손 행위로 인해 (에어포스원에) 탑승할 13개 언론사 중 하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WSJ은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기소돼 뉴욕 맨해튼 연방교도소에서 수감 중 사망한 엡스타인에게 2003년 외설스러운 편지와 그림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엡스타인이 작성한 ‘성접대 고객 리스트’에 트럼프 대통령이 포함돼 있다는 의혹인 이른바 ‘엡스타인 스캔들’이 확산되는 가운데 나와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쓴 적 없는 가짜 편지”라고 반박하며 WSJ와 사주인 루퍼트 모덕 등을 상대로 100억 달러(약 14조원)의 손해배상 청구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백악관이 갑작스럽게 WSJ 기자를 해외 출장 취재단에서 제외한 건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을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WSJ 배제 조치에 대해 백악관기자협회(WHCA) 회장인 CBS 소속 웨이자 장은 성명을 내고 “백악관이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언론사를 처벌하려는 이번 시도는 매우 우려스럽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트럼프 행정부는 ‘인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서 킹 목사(1929~1968)의 암살에 대한 연방수사국(FBI) 수사 기록를 공개했는데, 이 역시 엡스타인 스캔들의 여파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킹 목사 유족, 흑인 인권 운동가 앨 샤프턴 목사 등은 고인의 사생활 침해 우려가 클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여론 분산을 위해 이번 공개를 단행했다며 반발했다.
킹 목사는 1968년 4월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레이의 총격으로 숨졌다. 레이는 범행을 자백했다가 번복했고 1998년 옥중에서 사망했다. 그간 킹 목사의 유족들은 “레이의 단독 범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며 FBI가 킹 목사를 감시해 왔고 암살 배후라고 주장하고 있다.
총 24만 쪽이 넘는 분량의 공개 자료엔 암살 사건을 추적한 FBI 내부 보고서 등이 포함됐다. 다만 공개된 자료를 초기 검토한 결과 암살 공모자 존재 여부 등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이 평했다.
안규영 기자 kyu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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