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3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을수록 한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너야 한다”며 다자주의와 역내 협력을 촉구했다. 그는 같은 날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선 “패권주의는 오직 전쟁과 재난만을 초래할 뿐”이라고 밝혔다. 그간 다자외교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에 불참한 사이, 시 주석이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사실상 미국을 겨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APEC 정상회의 제1세션 연설문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발전의 불안정·불확실 요인이 늘어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시 주석은 “포용적인 경제 세계화를 추진하고, ‘아시아태평양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1993년 1차 APEC 정상회의에서 제시된 ‘아시아태평양 공동체 형성’ 비전을 다시 거론한 것.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정책 등으로 취약해졌다고 평가받는 다자주의 무역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 주석은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고, 세계무역기구(WTO)를 핵심으로 하는 다자간 무역체제의 권위성과 효과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시 주석은 오후에 열린 APEC CEO 서밋에선 서면연설을 통해 미국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그는 “세계는 지금 상호 이익과 상생의 길을 갈지, 아니면 패권주의와 정글의 법칙으로 회귀할지 기로에 서 있다”면서 “일방주의는 오직 분열과 퇴보를 가져올 뿐이며, 다자주의야말로 글로벌 도전에 대응하는 필연적 선택”이라고 했다.
전날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펜타닐 관세 10% 인하와 희토류 수출 통제 1년 유예를 주고받았다. 이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던 미중 무역전쟁은 일단 휴전 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양국이 반도체 첨단 기술 통제, 대만 문제, 희토류의 안정적 공급 등 핵심 사안을 피해가 일시적 휴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시 주석은 아태 지역 내 자유로운 무역과 투자, 높은 수준의 금융 협력을 제안했다. 특히 그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질적 향상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회원국 확대 등의 계기를 잘 활용해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 건설에 힘을 모으자”고 했다.
중국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과 WTO 등 다자주의 외교 무대를 등한시하는 사이 글로벌 체제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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