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 파워로 주도권 쥔 中 “6개월 한시 수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中, 갈등 재발땐 다시 통제 가능성

중국이 미국에 희토류 수출을 재개하기로 했지만 그 기간을 6개월로 제한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미국과 중국이 9, 1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2차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합의안을 도출하며 극단 대립을 피했지만 향후 무역 갈등이 심화된다면 중국이 다시 ‘희토류 무기화’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린젠(林劍)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양측 모두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은 이번 무역협상을 통해 중국이 4월부터 통제에 들어간 핵심 희토류 7종에 대한 수출을 재개하고, 미국은 항공기 엔진 등의 대(對)중국 수출 규제를 완화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WSJ는 협상에 참여한 인사들을 인용해 중국이 향후 협상을 위해 계속 희토류 수출 통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며 ‘6개월 한시 수출 허용’의 배경을 설명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조치가 사실상 중국이 협상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두 나라가 지난달 10, 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연 제1차 고위급 무역협상의 합의 사항을 이행하기로 한 ‘프레임워크(framework·기본 틀)’의 세부 내용도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은 이 과정에서도 희토류 무기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엔진,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폰, 주요 무기 등의 생산에 희토류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희토류가 협상 규칙 바꿔”… 中, 무기 핵심소재 앞세워 美약점 공략


[美中 통상전쟁]
中, 희토류 수출 6개월 한시적 허용
AI반도체 통제로 中 압박하던 美… 中의 희토류 수출통제 역습에
車업계 생산 차질 등 피해 가시화
다급해진 트럼프, 결국 입장 바꾼듯… 공급망 전쟁 지속땐 韓-日 등도 부담

“희토류가 (미중 통상협상) 규칙을 크게 바꿔놓았다.”

11일(현지 시간) 미국 외교매체 포린폴리시(FP)가 9, 1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2차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 결과에 대해 내린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차 고위급 무역협상 때는 물론이고 그간 인공지능(AI) 반도체와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EDA) 수출 통제를 무기 삼아 중국을 압박했다.

하지만 중국이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폰 등 각종 첨단 기기에 꼭 필요한 ‘핵심 희토류 7종’에 대한 수출 통제를 본격화하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속내가 다급해졌다. 희토류 부족으로 미국 주요 자동차 기업들이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등 피해가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런던 협상의 성과를 설명하면서도 “중국으로부터 희토류를 ‘선지급(up front)’ 형식으로 공급받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 허용 기간을 6개월로 제한했다고 보도해 희토류를 둘러싼 양측 이견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보여줬다.


● “中, ‘핵심 7개 희토류 지렛대’ 적극 활용”

이날 FP는 “런던 합의의 세부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미국과 중국이 각자의 공급망 관련 카드를 협상 테이블에 명시적으로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변곡점을 만든 건 중국이 그동안 주머니 속에 넣어 뒀던 희토류 통제 카드를 과감하게 협상 지렛대로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AI 반도체 등의 대(對)중국 수출을 강하게 통제했다. 중국은 “일방적이고 부당한 조치”라며 수차례 협상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국가 안보와 밀접한 사안이어서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에 반발한 중국이 이른바 ‘관세 전쟁’을 계기로 희토류 통제에 나서며 미국 산업계를 옥죄어 오자 트럼프 2기 행정부 또한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이 올 4월부터 수출 통제에 나선 희토류 7종은 사마륨, 가돌리늄, 루테튬, 스칸듐, 테르븀, 디스프로슘, 이트륨이다. 중국 희토류관리조례에서 규정하고 있는 17종 중 절반에 못 미치는 7종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마륨은 미국의 주력 전투기인 F-35 등 군사 장비 제작에 꼭 필요하다. 디스프로슘 역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모터에 들어가는 영구자석의 첨가제로 쓰인다. 이트륨과 테르븀도 레이저와 광전소자 소재로 쓰인다.

중국이 처음부터 수출 통제와 무역협상 연계를 원했고, 과감하게 희토류 통제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중국이 희토류 무기화를 무한정 밀어붙이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중국이 전 세계 희토류 공급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과도하게 미국을 압박할 경우 또 다른 대규모 희토류 보유국인 호주, 브라질 등과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공급망 전쟁은 지속되고, 한국 일본 등의 부담 커질 수도

이번 런던 협상을 통해 두 나라 간 통상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건 일단 막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모두 승인해야 유효한 프레임워크에 대해 두 나라는 아직 “정상의 승인이 이뤄졌다”는 발표를 하지 않았다. 런던 합의의 구체적 내용 또한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희토류 갈등에서 확인됐던 공급망을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뉴욕타임스(NYT)는 소식통을 인용해 “런던 협상에서도 두 나라가 반복적으로 격앙된 분위기를 연출했고 회담 결렬 순간도 수차례 맞았다”고 전했다. ‘희토류 무기화’의 위력을 확인한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계속 통제할 수 있고, 미국 역시 AI와 반도체 등 첨단 기술 통제를 강화할 수 있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는 역시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미국이 “대중 봉쇄 조치에 동참하라”고 압박하고, 중국은 희토류를 당근으로 제시하며 미국에 맞서라고 압박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중국#협상주도권#미중 무역협상#희토류#통상 갈등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