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본토 가까운 항로로 좁혀 통행료 걷어…“하루 12척만 통과”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4월 9일 20시 44분


호르무즈 폐쇄 경고속 대체 항로 설정
당국에 이메일 신청뒤 비트코인 결제
휴전 첫날 화물선 4척만 통과
유조선-가스운반선은 통과 못해
당분간 원유 수급 차질 불가피할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들 사이에서 이란에 대한 승리 선언이 시기상조였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월스트리트저널·WSJ)

미국과 이란의 휴전이 성사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8일(현지 시간)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선박 통항 등을 둘러싼 이견이 불거지고 있다. 이로 인해 위태로운 휴전이 이어지고 최악의 경우 휴전이 결렬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란이 △선박의 선별적 해협 통과 △자국이 설정한 항로 이용 △통행료 부과 등 까다로운 통항 조건 적용을 추진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하고 즉각적인 개방’을 전제로 휴전에 동의한 미국과 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 이란 “해협 통과 이메일 신청, 비트코인 결제”

파이낸셜타임스(FT)와 WSJ 등에 따르면 이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권한을 강조하며 해운사들에 비트코인으로 통행료를 받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란 석유·가스·석유화학 제품 수출업체 연합 하미드 호세이니 대변인은 FT와의 인터뷰에서 “해협을 통과하려는 모든 유조선은 이란 당국에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 이란이 견적을 완료한 뒤 가상화폐로 지불해야 할 통행료를 통보하면 선박들은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몇 초의 시간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통행료는 배럴당 1달러가 책정됐다. 200만 배럴의 원유를 운반하는 초대형 유조선의 경우 통행료가 최대 200만 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호세이니 대변인은 또 “2주의 휴전 기간 무기 밀반입이 이뤄지지 않도록 선박들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며 “모든 선박이 통과할 수 있지만 각 선박마다 절차에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이란은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WSJ에 따르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일일 선박 통항량을 12척 정도로 제한할 방침이다. 이는 전쟁 전 하루 통항량이 135척이었던 것에 비해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WSJ는 “휴전 첫날 통행 허가를 받은 선박은 단 4척”이라며 “이란은 (달러가 아닌) 가상화폐나 중국 위안화로 요금 지불을 요구했다”고 했다. 이란이 비트코인이나 위안화 결제를 추진하는 건 원유 달러 결제에서 나오는 이른바 미국의 ‘달러 패권’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NYT는 “휴전 첫날 통행 허가를 받은 4척은 모두 화물선이며, 유조선이나 가스 운반선은 통과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휴전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세계 원유 수급이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이란, 대체 항로 제시…해협 폐쇄 위협도

외신들에 따르면 이날 이란은 해상 무전을 통해 호르무즈 일대에 정박한 모든 선박을 대상으로 “혁명수비대 해군의 허가 없이 해협을 통행하는 선박들은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대체 항로를 이용하라”며 기존 항로보다 북쪽에 있는 케슘섬과 라라크섬 사이로 통항할 것을 요구했다.

그 배경에 대해 이란은 공식적으로는 “기존 항로에 기뢰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새 항로가 이란이 선박들을 감시 통제하기에 수월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란군 요충지인 라라크섬에는 대함 미사일과 해군 병력 등이 배치돼 있어 삼엄한 ‘검문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또 기존에 선박들이 많이 이용했던 항로보다 이란 본토와도 훨씬 가깝다. 통항 선박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날 오후 이란은 돌연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의 통행을 중단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스라엘이 친이란 무장단체인 헤즈볼라 공격을 명목으로 레바논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자 “휴전 협정 위반”이라며 해협 폐쇄를 선언한 것이다.

이에 대해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거짓 보도”라며 “그들(이란)이 공개적으로 하는 말과 사적으로 미국에 전하는 말은 다르며, 오늘 해협을 오가는 선박은 오히려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NYT는 “현재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이 해협이 계속 열려 있을지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만약 해협이 열리지 않는다면 이번 휴전 합의는 무산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미국은 이란이 요구한 이른바 10개 항 제안에 대해서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앞서 이란은 휴전 협상에서 미국이 △우라늄 농축 허용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지속 보유 △중동 내 미군 전투 병력 철수 등을 수용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미국은 “미국이 수용한 ‘버전’은 우라늄 농축 인정 등이 포함되지 않은 완전히 다른 계획이었다”고 부인해 향후 협상 난항을 예고했다.
#호르무즈#이란#유조선#비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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