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뺨 맞은 격…조지아주처럼 한국 기업 덕 본 곳도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9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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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배너 경제인협회장 비비안 리 인터뷰

韓기업,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
대규모 고용도 예정돼 있어
구금사태로 소상공인 등 타격 우려
한미 협의로 비자 문제 해결 필요

“조지아주(州)는 한미 경제 관계에서 아주 특별한 주였습니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이 80억 달러를 들여 메타플랜트를 세운 서배너처럼 한국 기업 덕을 많이 본 곳도 없어요.”

8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 일대의 한인 기업인들로 구성된 ‘서배너 경제인협회’를 이끌고 있는 비비안 리 회장을 만났다. 그는 4일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에서 발생한 미 이민 당국의 대대적인 한국인 근로자 체포 및 구금 사태에 대해 “동포 기업인 모두가 큰 충격에 빠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아직도 주변에서는 이게 정말 꿈이 아닌 현실이냐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지역경제도 큰 타격을 받을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덧붙였다.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의 서배너 지역 지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미국에서 홍보마케팅회사를 운영하며 13년간 다양한 한미 경협 사업을 이끌어 왔다. 지역 내 한국 기업인 교류는 물론이고 뉴욕, 뉴저지, 워싱턴 등 미 전역의 한미 교류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리 회장은 “그간 공장 건설을 위해 한국 기업과 직원들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알기에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이번 일에 대해 기업인으로서, 또 동포로서 큰 상처를 받았다는 분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또 “부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미 정부가 협의해 비자 문제를 원활히 해결했으면 좋겠다”며 “이 고비를 잘 풀면 양국 관계가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8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서 만난 비비안 리 서배너경제인협회 회장은 미 이민당국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한국인 직원 구금 사태를 두고 “이런 일이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서배너에서 터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번 사태가 전화위복이 돼서 양국 간 협력이 더 두터워지고, 특히 비자 문제가 확실히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배너=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8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서 만난 비비안 리 서배너경제인협회 회장은 미 이민당국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한국인 직원 구금 사태를 두고 “이런 일이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서배너에서 터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번 사태가 전화위복이 돼서 양국 간 협력이 더 두터워지고, 특히 비자 문제가 확실히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배너=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ㅡ지역 동포들은 HL-GA에 이민 당국이 들이닥쳤다는 소식을 어떻게 알게 됐나.

“그날(4일) 아침에 이 지역 동포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지금 이민 당국이 HL-GA에 쳐들어왔다며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계속 올라오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는데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서배너에서,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니고 한국인을 그렇게 대하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공장이 속해 있는 메타플랜트 부지 크기가 여의도의 4배다. 공장 완공 뒤 현대차가 지역사회에서 고용하겠다고 약속한 인원만 8500명에서 1만 명이 넘는다. 배터리 공장에서도 추가로 2000명에서 3000명 규모의 고용이 일어날 예정이었다. 한마디로 한미 경협의 핵심 중의 핵심인, 큰 의미를 지닌 프로젝트였다. 당연히 누구나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지’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ㅡ한국인 직원들이 마치 테러리스트나 중범죄자처럼 쇠사슬에 묶여 끌려 가는 모습에서 모멸감을 느꼈다는 한국 국민들이 많다. 동포 사회에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한국에서도 많이 놀랐겠지만, 미국에서 뿌리 내리고 살고 있는 동포들이 받은 충격은 말 그대로 엄청났다. 인도적인 차원에서도 쇼킹한 일이었지만 경제적으로 지금 이 지역이 한국 기업과 맺고 있는 관계를 고려해도 그랬다. 요즘 한창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K컬쳐 인기에 동포들의 사기와 자부심이 높았었는데,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미국 사회가 앞으로 한국과 한인 동포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겠는가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또 당장 현실적으로 메타플랜트가 서배너에 들어오면서 현대차 공장과 연계돼 돌아가는 경제 규모가 상당해 졌기 때문에 앞으로 동포들의 사업이 잘 될 수 있겠느냐는 걱정도 컸다.”

ㅡ메타플랜트 프로젝트가 지역 경제에 그렇게 상당한 영향을 줬나.


“물론이다. 오죽하면 조지아주 역사상 최대 해외투자 프로젝트라는 말이 나왔겠나. 지역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줬지만 제일 큰 영향을 준 부분 중 하나는 부동산이다.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메타플랜트가 들어서고 완공 후 최대 1만 명이 넘는 고용을 약속하면서 집이 부족해질 게 뻔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일대 어딜가도 아파트(4~5층 규모의 미국식 아파트)를 짓는 게 보일 정도로 건설 붐이 불 붙듯 일어났다. 보통 외지의 젊은이들이 타주로 취직해 살때에는 하우스(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에 살며 돈을 모으고 가정을 꾸려 하우스를 사는 패턴을 보인다고 한다. 서배너 지역 청년들로만은 공장에서 필요한 인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타 지역 젊은이들이 몰려들 게 확실했고, 그래서 아파트 건설 붐이 불었다. 코로나19에 한국 기업 투자 등이 겹치면서 실제 몇 년 새 이 동네 집값은 딱 ‘더블’로 두 배가 됐다. ‘앉아서 큰 돈 번 사람이 많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ㅡ지역 상권 영향은 어땠나.


“가게가 많이 생겼다. 또 일반 마트에 가도 예전보다 아시안 푸드 섹션이 훨씬 커졌을 정도로 지역에 들어온 한국 기업의 힘을 체감할 수 있었다. 지금은 공장 건설 막바지라 단속 과정에서 수백 명만 잡혔지만, 한창 건물이 올라가던 중에는 배터리 공장에서만 매일 밤낮 교대로 1000명, 2000명씩 인부들이 움직였다. 이 사람들이 지역 내를 돌아다니며 돈을 쓴다고 생각해봐라. 어떻겠나. 이들에게 공사 현장에 밥을 해다주는 ‘함바집’ 같은 식당도 생겼었고, 또 이들에게 몇달 간 숙식을 제공하는 ‘게스트 하우스’ 사업 같은 것도 많아졌다. 공장 건설과 함께 도로나 아파트 건설도 많았기 때문에 건설 분야에서는 사람 구하는 게 전쟁일 정도로 일자리가 급증했다. 알다시피 요즘 미국 경기가 점점 굉장히 침체되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요인 때문에 서배너는 작은 도시임에도 잘 버텨 왔다. 한마디로 서배너는 앞으로 더 잘될 일만 남은 ‘(꽃이) 피는 지역’이었다. 주민들의 기대도 컸다.”
8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서 만난 비비안 리 서배너경제인협회 회장은 미 이민당국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한국인 직원 구금 사태를 두고 “이런 일이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서배너에서 터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번 사태가 전화위복이 돼서 양국 간 협력이 더 두터워지고, 특히 비자 문제가 확실히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배너=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8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서 만난 비비안 리 서배너경제인협회 회장은 미 이민당국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한국인 직원 구금 사태를 두고 “이런 일이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서배너에서 터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번 사태가 전화위복이 돼서 양국 간 협력이 더 두터워지고, 특히 비자 문제가 확실히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배너=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ㅡ이번 구금 사태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며칠 사이에 정말 분위기가 급변했다. 생활 곳곳에서 변화가 단적으로 드러난다는 평가다. 한번은 구금 사건 다음 날 아침에 운동을 하러 공원에 갔더니 한 이웃이 다가와 날 위로하며 ‘어제 코스트코 가봤냐’고 하더라. 평소 퇴근 시간 이후에 가면 장을 보는 한국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던 곳인데, 그날 저녁 당장 한국 사람들이 없으니 텅텅 비었다며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고 했다. 어디 마트뿐이겠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백, 수천 명이 빠져나가면 집, 차, 식당 등 모든 것이 중·장기적으로 큰 피해를 입을 거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공장이 스탑되면 불법 체류한 분들 뿐 아니라 멀쩡히 시민권을 가졌거나 정상적인 체류 자격을 가진 이들도 일을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못 버는데 소비를 하겠나. 한국 돈으로 10억, 20억 원씩 투자해 현지에 빵집, 레스토랑을 준비 중인 동포들도 ‘찬물을 뒤집어썼다’는 반응이다. 하루 아침에 몇 백명, 몇 천명이 사라진다면 운영이 가능하겠나.”

ㅡ한국 기업에 대해 이 정도 수준의 단속을 준비해 온 지역 사회의 경계심이나 반감을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나.


“사실 한국인 직원들이 비자 발급이 가로막혀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통해 들어와 일하다 나간다는 사실은 이미 한참 전 조 바이든 행정부 때부터 너도 나도 알고 있던 일이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 때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막대한 투자를 한) 현대차 직원들이 공항 입국시 불편하면 안 된다며 ‘현대 전용 창구’까지 만들어 줬을 정도로 지금과는 태도가 180도 달랐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나 한국인들도 ‘설마 별일 있겠나’ 하며 안일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고 본다. 그러다 갑자기 ‘불법 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혀 버렸다. 일부 격앙된 동포들은 한국 기업이 돈 들여 경제 살리고 건물까지 지어 줬는데 ‘돈 주고 뺨 맞은 격’이라고 분개하기도 한다. 반대로 ‘그건 그거고, 그래도 법은 지켰어야 한다’는 의견도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현대차 같은 한국 기업이 미국 자동차 회사들을 위협할 정도로 너무 크니까 일부러 작정하고 친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신뢰 회복까지는 양국 간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ㅡ미 당국은 공장 건설 과정에서 적법한 현지인(미국인)을 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랬으면 모두가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용직) 인력 사무소를 운영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엄청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일단 미국인들은 이런 일(건설 막노동)을 하지 않는다. 라틴계 직원조차 부족해서 일당이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미국인을 여기에 쓰는 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한 인력 사무소 운영자는 ‘길에 걸어다니는 사람 중 누구든 좋으니 데려다 고용하고 싶다’고도 하더라. 한국 기업들이 일부러 미국 노동자를 채용하지 않거나, 이들에게 기회를 안 준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여기 온 한국 직원들이 일하는 거 보면 정말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일했었다. 특히 하청업체 직원들은 납기를 맞추기 위해 하루 2교대로 새벽까지 일하고, 숙소에 가면 쓰러져 자기 바빴다더라. 아는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 왈, ‘늦게라도 좀 먹고자라고 밥을 차려줘도 밥도 못 먹고 쓰러져 잠든다’고 했다. ‘못봐서 그렇지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보면 엄청 속상할거다’란 말도 했다. 한국인이니 그렇게 성실하게 일하지 누가 요즘 그렇게 일하겠나.”

ㅡ모든 면에서 타격이 클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걱정이 많이 되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지금의 한국은 우리가 처음 이민 왔던 1990년대의 ‘다리 무너지던 한국’이 아니다. 한국 기업들이 이곳에 몇 십조 원의 돈을 투자해 공장을 다 세웠는데 영원히 멈춰 있겠나. 그렇진 않을 것이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결국 회복되고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다. 오히려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돼서 한미 정부가 한국 직원들의 비자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했으면 좋겠다. 오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업들에 미국에 와서 여기 노동자들을 뽑아 가르쳐줘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지 않았나. 그럴려면 일단 가르쳐줄 사람이 올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일이 잘 지나가고 나면 양국 간 이해도 넓어지고 협력 관계도 더 두터워지길 바라고 있다.”

#미국#트럼프#구금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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