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트럼프, 투자금액 올렸다 내렸다 해… 그냥 오케이 하지않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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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15% 합의]
관세협상 타결 막전막후
“트럼프에게 리스펙트 느낌 줘라” 러트닉 언질… 사실상 ‘리허설’
“韓 만날 것” 트럼프 SNS 보고 알아… 트럼프가 질문하면 협상단 답변
30∼40분 면담… 숫자 고쳐쓰진 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무역협상이 타결된 바로 다음 날인 31일(현지 시간) 트루스소셜에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사령관(Dealmaker in Chief)’이라는 문구와 함께 주먹을 불끈 쥔 자신의 사진을 게시했다. 사진 출처 트럼프 대통령 트루스소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리스펙트(respect·존중)’ 받는다고 느끼게끔 계속 각인시켜라.”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오전 11시 미국 워싱턴의 상무부 청사.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한국 무역협상단으로 방미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과 가진 회의에서 이같이 조언했다.

앞서 러트닉 장관은 워싱턴 상무부와 뉴욕 자택, 영국 스코틀랜드 등에서 한국 협상단과 만나 큰 틀의 협상안 조율은 거의 끝낸 상태였다. 그런 만큼 이날 1시간가량 이어진 회동은 최종 관문인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을 앞둔 사실상의 ‘마지막 리허설’이었다.

● 트럼프가 SNS에 글 올려 면담하게 된 것 알게 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협상단은 이날 러트닉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이 진행될 수도 있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러트닉 장관이 이른바 ‘트럼프 상대법’을 자세히 조언해줬기 때문이다. 특히 러트닉 장관은 앞서 일본과 유럽연합(EU)의 무역합의 과정을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협상단을 만나서도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임을 주지시켰다. 그는 또 “트럼프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협상가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며 협상단에 모의질문도 던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러트닉 장관은 ‘리스펙트’란 단어를 여러 차례 반복해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을 물어도 그가 존중받는다고 느끼게끔 답하라는 것. 또 한국의 협상안이 일방적으로 미국에 ‘양보’하는 개념이 아닌, ‘협력’ ‘상생’의 취지라는 점을 강조하란 조언도 덧붙였다.

러트닉 장관과의 만남은 정오 무렵 종료됐다. 이후 협상단은 오후 3시 52분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오늘 오후 한국 무역협상단과 만날 것”이라고 쓴 글을 보고 백악관에서 마지막 담판을 벌일 때가 왔음을 알게 됐다. 구 부총리는 이날 한국 특파원단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이) 오늘 이렇게 전격적으로 이뤄질지 알 수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만남이) 현실화됐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 “트럼프, 韓 들고 온 투자액에 그냥 ‘오케이’ 하진 않아”

오후 4시 반경 한국 협상단이 백악관에 도착했다. 보안 검사를 거친 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직전까지도 협상단은 예상 질문을 수차례 되뇌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은 대통령이 질문을 던지면 협상단이 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한국 협상단이 가장 우려했던 대미(對美) 투자액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의 즉석 인상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일본과 EU와의 무역협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즉석에서 대미 투자액을 직접 올렸다. 협상단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의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 훨씬 큰 만큼, 일본이 약속한 수준의 투자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4조262억 달러로 한국(1조8697억 달러)의 두 배 이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한국이 준비했던 투자액보다는 더 많은 금액을 요구했다. 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액에) 그냥 오케이 사인을 해주진 않았다”며 “그게 왔다 갔다 하면서 금액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확정한 금액은 우리의 예상 범위 안에 있는 숫자였다”고 전했다. 또 일본과 EU와의 협상 때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문서에 자신이 원하는 숫자를 쓰거나, 적혀진 숫자를 지우고 새로 쓰는 상황은 없었다. 여 본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보통 대통령이나 총리가 아니면 직접 협상하지 않는데 각료급 협상단(한국 협상단 의미)을 직접 협상한 건 한국을 존경하고 중시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국 협상단은 백악관에 들어선 지 1시간 반쯤 지난 오후 6시경 백악관에서 나왔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 시간은 30∼40분 정도였다. 그리고 오후 6시 16분, 마침내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한미 무역협상 타결 소식을 알렸다.

협상단이 이날 러트닉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합의 내용을 최종 점검한 지 7시간 16분 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러트닉 장관#관세협상#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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