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거장 ‘스탠리 피셔’ 별세…한국 금융위기 구제 주도

  • 뉴시스(신문)
  • 입력 2025년 6월 2일 09시 19분


코멘트

연준 부의장·IMF 부총재·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역임…‘뉴케인즈학파’ 대표 학자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이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부의장을 지낸 스탠리 피셔가 향년 81세로 별세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피셔 전 부의장은 MIT 경제학 교수,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서 족적을 남겼다.

그의 별세 소식은 이스라엘 중앙은행의 발표로 알려졌다. 피셔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중앙은행 총재로 재임했는데 이스라엘 아이작 헤르조그 대통령은 피셔를 “세계적 수준의 전문가이자, 진실성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라고 추모했다.

1940년대 영국령 북로디지아(현 잠비아)에서 태어난 피셔는 1966년 미국 MIT로 유학을 떠나 박사과정을 밟고 시카고대학교에서 몇 년간 강의한 뒤 MIT 교수진에 합류했다.

피셔는 ‘뉴케인즈 학파’의 핵심 이론을 정립했고, MIT 동료 루디거 돈부시와 함께 집필한 ‘거시경제학’ 교과서는 많은 경제학도들의 필독서가 됐다.

1988년 세계은행에 합류한 피셔는 1994년부터 2001년까지 IMF 제1부총재로 재직하며 한국의 금융위기 구제 프로그램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미국 재무부와 함께 한국뿐 아니라 멕시코, 태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 금융위기를 총괄했다.

그는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 막대한 구제금융을 신속히 투입하되 정책 개혁을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금리, 환율 자유화, 민영화, 재정 긴축 등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는 훗날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2001년 “이러한 정책은 금융 부문 붕괴, 고금리, 사회 불안정, 정치 혼란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피셔는 “한 가지 환율 제도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어떤 제도를 채택하든 언젠가는 다른 제도를 원하게 될 것”이라며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후 시티그룹 부회장을 거쳐 2005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취임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이스라엘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그의 재임 기간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시기와 겹쳤고, 그는 2010년 이스라엘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법률 제정에 핵심 역할을 했다.

2014년에는 미국 연준 이사로 복귀해 재닛 옐런 의장과 함께 일했지만, 금리정책을 두고 온건파인 옐런과 달리 더 매파적인(금리 인상 지지) 입장을 취해 내부 갈등이 있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금융 규제를 철회하려 하자 “매우 위험하고 근시안적인 행보”라고 공개 비판했다.

피셔는 2017년 말 개인적인 사유로 임기를 6개월 남기고 연준에서 물러났다.

그의 별세 소식에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그의 지혜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길을 제시하고 세계 협력을 강화했다”고 애도했다.

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그는 뛰어난 경제학자이자 정책가였고, 그보다 더 훌륭한 인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