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 위장 반입 “러 9조원 피해”
직접 지휘 젤렌스키 “1년반 걸린 작전”
2차 휴전협상 전날 러 고강도 압박
우크라이나가 1일(현지 시간) 러시아 본토의 5개 공군기지를 무인기(드론) 117대로 기습 공격해 러시아의 Tu-95, Tu-22, A-50 등 전략폭격기와 공중조기경보기 41대를 파괴했고, 최소 70억 달러(약 9조6600억 원)의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가 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시아와의 2차 직접 휴전 협상을 하루 앞두고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 이번 공격을 감행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또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휴전 협상 타결을 강조해온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항의 메시지를 담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2차 휴전 협상은 1시간 만에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일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폭발물로 무장한 드론을 이용해 러시아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주의 벨라야 공군기지, 북서부 무르만스크주 올레냐 공군기지 등 다섯 곳을 타격했다. 특히 벨라야 기지는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4300km 떨어져 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가한 최장거리 공격이다.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러시아 본토 어디든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전쟁 중 우크라이나가 드론을 이용해 러시아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공격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작전에 ‘거미줄’이란 이름을 붙였다. 위장 트럭을 이용해 러시아 본토에 드론을 밀반입한 후 원격 조종을 통해 공격을 단행했다. 특히 목재 상자에 드론을 숨겨 적진 깊숙이 침투했단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 목마’를 연상케 한다고 전했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미국 하와이주 진주만 기습 공격에 빗대 ‘우크라이나판 진주만 공격’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작전을 직접 지휘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계획 수립부터 성공적인 실행까지 1년 6개월 9일이 걸렸다”며 “역사책에 기록될 만한 작전”이라고 자찬했다.
이동식 목재창고속 드론, 4300km밖 러 기지 공습 “진주만급 타격”
‘우크라판 트로이 목마’ 러 급습 작전본부는 러 본토 연방보안국 옆… 1년6개월 치밀한 준비끝 성공 젤렌스키 “러 폭격기 34% 무력화”… 외신 “현대전의 새로운 양상 열려”
작전 세우는 우크라, 불타는 러 군용기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1일 공개한 사진에서 바실 말류크 SBU 국장이 무인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기 전 주요 목표물인 러시아 전략폭격기의 기종과 배치도를 살펴보고 있다(위쪽 사진).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아 활주로에서 불타는 러시아 군용 항공기. SBU는 러시아 본토 5곳의 공군기지를 공습해 최소 70억 달러(약 9조6600억 원)의 피해를 입혔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SBU 페이스북“우크라이나의 ‘트로이 목마’ 겸 놀라운 군사적 성과다.” 우크라이나가 1일 4300km 떨어진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주를 포함한 러시아 본토 5곳의 공군기지를 무인기(드론) 117대로 공격해 전략폭격기 41대를 파괴한 것을 두고 제임스 스태브리디스 전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총사령관이 CNN을 통해 논평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스가 트로이를 함락시킬 때 군인들을 숨긴 대형 목마를 이용했듯 우크라이나가 드론을 이동식 목재 창고에 숨겨 러시아 본토 깊숙이 밀반입한 점을 짚었다.
최근 전황이 러시아로 기울었음에도 이번 공격이 우크라이나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BBC는 “러시아의 압도적 강세에도 우크라이나가 지략이 풍부하고 결연한 적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줬다”며 “대담하고 독창적인 공격”이라고 진단했다.
● 1년 반 동안 치밀하게 준비… 우크라 작전 본부 러시아 본토에서 가동돼
우크라이나는 이날 이르쿠츠크주 벨라야 공군기지, 무르만스크주 올레냐 공군기지, 랴잔주 댜길레보 공군기지, 이바노보주 이바노보 공군기지, 아무르주 우크라인카 공군기지 등 러시아 본토 5곳의 기지를 폭발물을 실은 소형 드론을 대거 투입하는 방식으로 공격했다.
이번 공격은 1년 반의 치밀한 준비를 거쳐 진행됐다. 특히 공격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작전 본부가 러시아 본토에 비밀리에 설치된 채 가동됐다. 이 인근에 러시아의 방첩 업무를 담당하는 연방보안국(FSB) 시설까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공격을 감행한) 우리의 작전 본부는 FSB 바로 옆에 있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또한 이번 공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우크라인카 기지 공격은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공격으로 러시아의 주력 전략폭격기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인 Tu-95, Tu-22M, Tu-160, A-50가 파괴됐다. Tu-95, Tu-22M, Tu-160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미사일 공습을 가할 때 자주 쓰인다. 특히 Tu-160은 핵미사일 탑재도 가능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장거리 전폭기의 최소 34%가 무력화됐다”고 주장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 또한 “러시아의 장거리 미사일 및 드론 공격 능력이 일시적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작전으로 드론을 사용한 현대전의 새로운 양상이 열렸으며 중국 등이 미국을 공격할 때 우크라이나를 참고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미국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톰 슈가트 연구위원은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중국의 컨테이너선과 트럭에서 수천 대의 드론이 쏟아져 나와 미 공군의 핵심 전력을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르쿠츠크처럼) 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군사 자산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저렴하고 군사용으로 개조하기 쉬운 드론의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시대”라고 평가했다.
● 러시아-우크라의 휴전 협상에도 영향 미칠 듯
이번 공격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현지 시간 2일 오후 1시에 열린 양측의 2차 직접 휴전 협상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 발발 후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 2014년 러시아가 강제 합병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의 영유권 등을 두고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격을 당한 러시아가 향후 협상에 제대로 나서지 않거나, 우크라이나에 대대적인 보복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로만 알레힌 등 러시아 군사 전문가들은 “진주만 공습을 당한 미국이 일본을 호되게 응징했듯 우크라이나에 가혹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1일 격전지 쿠르스크주에서 발생한 열차 탈선으로 최소 7명이 숨진 사고의 배후에도 우크라이나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이번 공격을 통해 러시아는 물론이고 트럼프 2기 행정부에도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때 러시아와 강하게 밀착하며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휴전 협상 타결을 강요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이에 BBC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때 ‘우크라이나의 협상 카드가 없다’고 여겼던 트럼프 대통령이 틀렸다는 점을 증명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를 패자로 가정하고 휴전 협상 타결을 압박하지 말라는 취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