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中의 간섭과 영향력에 우려·반대”…이례적 입장문
‘中과 거리두기’ 요구 의미…새정부 안미경중 외교 험로 예고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인 2023년 6월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관저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2023.6.8. 국회사진취재단
미국 백악관이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에 대해 처음 내놓은 입장문에서 이례적으로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을 언급해 주목된다. 이재명 정부의 대(對)중 외교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담은 것으로 풀이되는데,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최대 현안인 한미 외교에서 혹독한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백악관은 3일(현지시간)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묻는 뉴스1 질의에 ‘백악관 관계자’ 명의로 “미국과 한국의 동맹은 여전히 철통같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백악관은 “한국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진행됐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에 대해 여전히 우려를 표명하며 반대한다”라고 했다.
백악관, 韓대선 결과에 이례적 中 언급…“간섭·영향력 반대”
두 문장의 짧은 입장문에서 제3자인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자, 적잖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가까운 동맹뿐 아니라 어느 나라의 대선 결과에 대해서도 그 첫 평가에 제3국의 영향력을 운운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트럼프 1기 때인 2017년 5월 치러진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해 당시 백악관은 축하의 말부터 건넸었다. 이어 ‘한미동맹의 지속적인 강화’와 ‘양국 간 영원한 우정과 파트너십을 심화하기 위한 협력 고대’ 등 동맹을 향한 예상가능한 덕담을 담았을 뿐이다.
그 내용도 심상치 않다. 문장 전체로 보면, 이번 한국의 대선에 중국의 간섭과 영향이 없었다는 식의 언급이긴 하지만, 이는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을 전제로 하는 만큼 듣기에 따라서는 외교적으로 매우 거북한 표현이다.
거의 비슷한 시각에 나온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명의의 입장문이 “한미일 3국 협력 강화” 등 통상적인 한미동맹 수준의 언급을 담고 있는 것과도 비교된다.
백악관이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미국의 최대 위협인 중국에 대한 우호적 접근으로 전개되는 것을 작심하고 경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새 정부가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TV 토론에서 “대한민국 외교 근간은 한미동맹”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중국과 러시아를 도외시하면 안 된다. 불필요하게 적대시할 필요가 없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들과의 관계를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미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여러 국가가 중국과의 경제 협력과 미국과의 방위 협력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미국과는 동맹 관계를 맺어 안보를 도모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소위 ‘안미경중’(安美經中)을 추구하는 데 대한 경고다.
헤그세스 장관이 한국을 특정해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중국이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인 한국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백악관은 이번에는 아예 마음을 먹은 듯 한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논평을 하면서 중국을 거론했다.
미국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이번 대선 결과와 관련, “이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서는 실용적이고 균형 잡힌 접근을 주장하며 안정적으로 관리할 의지를 나타냈다”며 “그러나 이러한 정책 방향은 트럼프 행정부와 충돌의 소지를 안고 있다. 즉,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경제 관계를 심화할 수는 없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韓대선 기다려온 트럼프…관세협상 기선제압 포석도
아울러 이번 백악관의 이번 중국 언급에는 관세 협상이 비로소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안보를 앞세워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 역시 깔려 있을 수 있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선포 이후 대통령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인용 결정, 이후 대선까지 6개월간 이어져 온 리더십 공백기를 비로소 해소했다.
관세 협상을 서두르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도 동맹이자 조선, 에너지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협력이 필요한 한국의 새 정부 출범은 손꼽아 기다려온 사안일 가능성이 높다.
관세협상을 이끌어갈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포함한 내각 구성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협상을 서두르려는 미국 측의 요구에 한국이 부응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 때문에 이 대통령에게는 미국을 설득해 최대한 시간을 확보하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야 하는 고난도 과제가 놓여 있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로서 상호관세(25%), 철강(50%) 및 자동차(25%) 품목별 관세 등을 면제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위원장은 이날 워싱턴타임스재단 주최 세미나에서 “진보 성향의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구축되어야 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오는 7월 8일까지가 유예기간인) 관세 협상은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 한국에 대한 추가적인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더 큰 과제는 한국이 미국 동맹국으로서 적어도 중국과의 탈동조화나 중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는 요구가 있을 수 있다”며 “이는 한국의 경제 이익을 위협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북한과의 6자회담 특사 및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미국 대표를 지낸 조셉 디트라니는 같은 세미나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목표, 특히 중국에 대한 목표를 강력히 지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정말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미 정상 첫 대면은 언제…G7·나토정상회의서 성사 가능성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은 곧 다자간 국제회의를 계기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4일부터 이틀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여기에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 4개국(IP4)을 초청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최근 나토 정상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해 왔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열릴 장소가 헤이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보다 앞서 오는 15~17일 캐나다에서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는데, 한국이 초청받고 이재명 대통령이 여기에 응한다면 한미 정상 간 대면이 더 빨라질 수 있다. 한국은 G7 회원은 아니지만, 단골 초청 대상국이다. 한국은 2023년(일본), 2021년(영국)에 초청받았는데, 이번에도 초청받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에 응할 경우 대선 후 불과 10여 일 만에 국제무대 데뷔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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