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휴전]
이스라엘-이란 휴전 배경
외교치적 필요한 트럼프 전격 휴전… 고유가 부담-지지층 반발도 고려
경제난 이란, 하메네이에 불만 커져… 군사역량 부족도 드러나 민심 이반
중동 전쟁 끝내고 나토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이 24일(현지 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기지에서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탑승을 위해 걸어가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휴전 합의를 이끌어 낸 트럼프 대통령은 24,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캠프스프링스=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이스라엘과 이란의 휴전 합의를 발표했다. 21일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이란 본토 공격을 감행하는 등 최근 대(對)이란 압박에 나섰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틀 만에 전격 휴전을 선언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를 두고, 분명한 외교 치적을 쌓으려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란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전쟁을 곧 종식시키겠다”고 장담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중동 분쟁이 길어지면 고유가 등으로 미국 경제의 부담도 커지는 만큼 이란 핵 시설 타격에 따른 성과와 조속한 휴전을 강조하자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장기 집권에 따른 국내외 비판과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이란의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도 내심 휴전을 원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의 압도적 공습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의 핵 시설 공격도 발생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정권 교체’까지 언급했기 때문이다.
‘주적’ 이란에 대한 총공세 중이라 상대적으로 휴전 의지가 약할 수 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휴전 제안을 무시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0월부터 이어져 온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감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뜻이다.
● 치적 필요한 트럼프, 고유가+국내 반대 여론 부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휴전’을 택했다고 논평했다.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중동 전문가 조너선 패니코프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빠른) 휴전 속도에 놀랐다”고 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본토 핵 시설 공격이란 ‘초강경 카드’를 통해 숙적 이란을 충분히 압박했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의 폭격 후 6개의 거대한 구멍이 난 이란 포르도 핵 시설의 위성 사진과 방공망이 와해된 이란의 무기력한 모습은 재집권 뒤 뚜렷한 외교안보 관련 치적이 없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분히 성과로 강조할 수 있는 소재였다. 관세와 반(反)이민 정책 등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동에 계속 관여할 경우 고유가 등에 따른 유권자 불만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이 빠른 휴전을 이루는 데 공을 들였을 이유로 꼽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공습이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 불안을 느꼈다. 실제로 그는 23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대형 에너지 기업에 “기름값을 낮추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야당 민주당은 물론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강경 보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또한 이란 공습에 부정적이라는 점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1기에 백악관 수석 전략가를 지냈고, 보수층에서 영향력이 큰 스티브 배넌도 미국의 이스라엘-이란 충돌 개입에 대해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정권 교체 위협 하메네이도 휴전 불가피
1989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하메네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이란의 정권 교체 가능성을 언급하자 상당한 위기 의식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집권 내내 경제 발전보다 중동 내 시아파 세력 확대, 핵무기 개발 추진 등에 골몰했다.
이로 인한 만성적인 경제난으로 국민 불만이 고조된 가운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연이은 공습으로 군사 역량 부족까지 드러나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 핵심 지지층인 보수층의 이반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P통신 등은 이번 전쟁으로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빵을 구하기 위한 긴 줄이 목격되는 등 생필품 고갈에 대한 국민 불안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전쟁 중 하메네이가 ‘죽는다 해도 결사 항전에 나서겠다’는 ‘투사’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한 점도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암살 위협에 대비해 수도 테헤란 일대의 지하 벙커에서 은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하메네이의 신변과 무관하게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신정일치 체제를 고수했던 이란 정치 체제가 변화를 맞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현실적으로 이란의 군사 역량이 현저히 약화됐다는 점 또한 이란이 휴전을 수용한 원인으로 꼽힌다. 이란은 전쟁 전 약 2000기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전쟁에서 600∼700여 기를 소모해 미사일 비축량이 크게 줄었다.
한편 네타냐후 총리의 경우 이란의 핵 역량이 제거됐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계속 공격을 이어가는 것을 원했을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전쟁에 따른 국민 불만, 경제적 부담,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의지 등을 무시하긴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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