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례를 깨는 파격에 새로운 사례가 추가됐다.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직접 통화에 나서고 있다. 기자들은 그의 개인 번호로 전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폭격,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 등 국정의 주요 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의 전화를 받았다. 저장되지 않은 전화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도 별다른 우려없이 받았다고 한다. 그의 특별한 전화 사랑을 살펴봤다.
● 모르는 번호도 곧잘 받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는 오래된 생활 방식이다. 수십 년간 뉴욕에서 부동산 사업가로 살며 유선전화로 일을 처리했고, 현재도 집무실 책상에 두 대의 유선전화가 놓여 있다. 소셜미디어 등장 이전에는 전화가 세상과 직접 소통하는 창구였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라디오 토크쇼에 전화를 걸어 중국의 불공정 무역과 이민 문제에 대한 불만을 자주 토로했다고 한다. 언론과도 자주 전화 통화를 가졌다. CNN에 따르면 그는 1980년대부터 언론에 짧고 강렬한 코멘트를 하는 인물로 통했다. 영 내키지 않는 통화를 할 때는 가짜 대변인 ‘존 배런’인 척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6년 대선 승리의 밤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고 한다. 한 고문은 당시 상황에 대해 디애틀랜틱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모든 전화를 다 받고 있었어요. 그 번호들은 연락처에 저장된 게 아니었죠. 그냥 전화가 오면 받는 거예요. 놓치고 싶지 않아 하니까요.”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모르는 번호도 받는 통에 백악관은 초긴장 상태였다고 한다. 특히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두번째 백악관 비서실장이었던 존 켈리 전 해병대 장군과는 휴대전화를 두고 충돌했다. 보안 문제에 매우 엄격했던 켈리는 러시아와 중국의 도청 위험성을 거듭 경고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휴대전화를 빼앗으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했다고 한다.
디애틀랜틱에 따르면 한 전직 참모는 트럼프 대통령이 “켈리의 우려는 사실이 아니다. 내 휴대전화는 최고의 제품이다”라고 반박했다고 했다. 이에 1기 행정부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늘 도청되고 있다고 전제하고 대응책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 올려진 두 대의 유선전화. 워싱턴=AP 뉴시스또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 내용이 언론에 유출된 뒤로 더욱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한 통화를 선호했다고 한다. 유선전화를 통하면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관료들이 언제든 통화를 엿들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것.
지난해 11월 5일 대선 직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휴대전화를 중국 해커들이 엿들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중국 해커들이 미국 통신망의 핵심 구조까지 침투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세 기간을 거치며 이란이 트럼프 캠프의 이메일 시스템을 해킹했고, 중국이 공화당 전국위원회(RNC)의 이메일을 뚫는 등 보안 문제가 잇따라 발생한 상태였다. 하지만 디애틀랜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휴대전화 도청 가능성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통화 목록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목록은 그의 권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해외 정상, 기업 총수, 고액 기부자 등이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 대선 승리가 확정된 시점이었던 지난해 11월 6일 오전에 그는 한 보좌관에게 “믿을 수 있겠냐, 벌써 정상 20명이 나한테 전화를 했다. 다들 나를 추켜세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 휴대전화 3대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전화에는 추가 보안 장치가 탑재됐다고 한다. 전화번호 또한 여러 차례 바꿨지만 그의 번호를 아는 기업인과 정치인, 언론인의 전화가 매일 쏟아진다.
집권 1기 때는 언론과 전화를 백악관 공보팀을 통해 조율했다. 그러나 백악관 복귀 뒤에는 참모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언론과 통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4일에는 디애틀랜틱 소속 기자 마이클 셰러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다. 당시 이란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을 미국이 지원하는 것을 두고 트럼프 진영 내에서 의견이 쪼개진 상황이었다. 보수 논객 터커 칼슨은 중동 개입이 ‘미국 우선주의’에 어긋난다고 맹비난했다. 셰러가 칼슨의 의견에 대한 생각을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의 의미는 내가 정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3분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가 예정되어 있다며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낙관했다고 한다. 급히 통화를 끊으면서는 이렇게 말했다.
올 4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과 만나 관세 협상을 하기 전 직접 서명한 모자를 건네고 있다. 책상 모퉁이에 휴대전화를 올려뒀다. 사진 출처 백악관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미군의 이란 폭격 당일에도 여러 언론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폭스뉴스의 브렛 베이어와 션 해니티, ABC의 조너선 칼, NBC의 크리스틴 웰커, 로이터통신의 스티브 홀랜드, 액시오스의 바라크 라비드와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로 “오늘 밤 매우 큰 성공을 거뒀다”고 자찬하는 내용이었지만, 이스라엘 출신인 라비드에게는 “당신의 이스라엘은 이제 훨씬 안전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CNN 소속 브라이언 스텔터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과 전화 인터뷰에 응할 때 인용 한두 줄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코멘트를 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그래도 기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통화할 수 있다면 무조건 해야 한다”고 AP통신에 설명했다.
대통령 정보 수집 데이터베이스 롤콜에 따르면 트럼프 1기 때는 인터뷰의 89%가 녹취나 영상 등 공개 기록이 있었지만, 2기에는 전화 인터뷰가 늘면서 이 비율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그간 각을 세우던 언론과 전화 인터뷰에는 응하는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의 디애틀랜틱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던 셰러는 AP통신에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말하는 걸 좋아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길 원한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거 취재한 어떤 대통령과도 완전히 다르게 언론을 대한다.”
● 음성메시지 남기기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전화를 거는 일도 종종 있다. 만평 ‘딜버트’를 연재하는 만화가 스콧 애덤스는 올 5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일화를 X에 공개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 음성사서함으로 넘긴 뒤에 나중에 확인해보니 발신자가 꽤 긴 음성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여보세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입니다”라고 시작하는 메시지는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로 끝이 났다. 애덤스는 진짜로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를 걸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당연히 다시 전화하진 않았다. 너무 황당했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몇 시간 뒤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와 이번에는 받았다. 진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애덤스가 말기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하자 그의 근황을 듣고 연락한 것이었다. 음성메시지 역시 평소에 주변 지인들에게 자주 남기는 편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덤스의 상황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진 뒤 이렇게 전화를 마쳤다고 한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해요. 내가 어떻게든 해줄게요.”
31화 요약: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보안 우려에도 개인 휴대전화를 통한 직접 소통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에는 언론과도 참모를 거치지 않고 바로 통화하고 있다. 통화 상대는 해외 정상부터 언론인, 만화가까지 다양하다. 때로는 다정한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방식으로 직접 미담을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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