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관세정책 및 무역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21일(현지 시간) 경제전문매체인 CNBC와의 인터뷰에서 “단지 합의를 위해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음 달 1일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시간에 쫓겨 상대국들에 ‘적당한 양보’를 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우리는 계속 협상할 수 있다”고 말해 8월 1일 부과일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전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CBS와의 인터뷰에서 “8월 1일에 새로운 관세율이 적용되지만 이후에도 국가들은 우리와 협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은 4월부터 지난달까지 7차례 협상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합의를 이루지 못한 대일 무역협상에 대해 “일본의 정치 상황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겠다. 미국 국민을 위한 최고의 합의를 끌어내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농산물 수입 확대 등을 꺼린 사실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앞으로도 일본이 민감해하는 품목의 관세 적용과 시장 개방 등을 추진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유럽연합(EU)과의 무역협상에 대해선 “밀고 당기는 게 협상의 본질”이라며 “관세율이 올라가면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큰) EU가 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보다) 더 빨리 협상을 하길 원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합의가 지연돼 높은 관세가 부과되면 EU에 더 불리할 거라는 얘기다.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등 주요국들에 높은 관세율을 책정한 후 이를 피하려면 관세 유예 만료 전까지 합의하라고 압박해왔다. 하지만 이날 베선트 장관이 서두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낸 건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일부 국가들이 금융시장 불안 등 미국의 조급함을 이용해 ‘버티기 전략’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어차피 좋은 조건으로 합의하지 못한다면 일단 고관세를 부과한 뒤 시간을 갖고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이 ‘협상의 질’을 강조한 게 자동차·철강·의약품 등에 매기는 품목 관세를 내리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한국, 일본 등을 상대로 요구해 온 농산물 및 자동차 시장 개방 등도 계속 강조할 것임을 드러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날 베선트 장관은 최근 무역합의를 타결한 인도네시아가 미국산 농산물과 보잉 항공기 구매를 약속한 사실을 콕 집어 강조했다. 인도네시아는 45억 달러(약 6조2518억 원)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과 50대의 보잉 항공기를 구매하기로 미국과 약속했다. 인도네시아와의 무역합의가 발표된 뒤 주요 외신 등에선 미국에 훨씬 유리한 결과란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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