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불균형, 세계 무역 체제의 경직성 등
자유무역 근본주의자들이 이단시해온 문제들
“트럼프 라운드”가 본격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턴베리=AP/뉴시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는 미국 등 일부 국가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보다 공정한 세계무역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 관세정책을 주도하는 핵심 인사 중 한명으로 꼽히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가 7일(현지시각) 미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트럼프의 무역 대표: 국제질서를 재편하는 이유(Trump’s Trade Representative: Why We Remade the Global Order)라는 글에서 그같이 주장했다. 다음은 기고문 요약.
◆중국이 WTO 무역 체제 최대 수혜자
현재 글로벌 질서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경제 효율을 추구한다며 166개 회원국의 무역 정책을 규율하도록 설계된 체제지만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체제다.
이 체제 아래 미국은 산업 일자리와 경제 안정을 잃었고 다른 나라들은 필요한 개혁을 수행하지 못했다.
이 체제의 최대 수혜자는 국영기업과 5개년 계획을 운영하는 중국이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나라들에서 각국의 필수적 이익을 보호하지 못하는 이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져왔다.
이제 개혁이 시작됐다.
지난주 스코틀랜드 해안의 트럼프의 턴베리 리조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옌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이 역사적인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공정하고 균형 잡혀 있으며 다자간 기구의 모호한 이상이 아닌, 구체적 국가 이익을 실현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미국은 외국 시장 접근과 투자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고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세계 무역 질서의 기초를 마련했다.
기존 체제는 관세를 정당한 정책 도구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미국이 제조업과 기타 핵심 산업 부문에 대한 관세 보호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지난 30년 미국은 외국 상품, 서비스, 노동력, 자본의 대규모 유입을 허용하기 위해 자국 시장에 대한 장벽을 급격히 낮췄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미국에 대해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채 보조금, 임금 억제, 느슨한 노동·환경 기준, 규제 왜곡, 환율 조작 등의 정책을 총동원해 수출을 인위적으로 촉진했다.
그 결과 미국 등 일부 국가들이 ‘최후의 소비자’가 된 반면 다른 나라들은 경쟁자를 희생시키는 경제 정책을 추구할 수 있었다.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이 게임에 능숙했고, 월가와 워싱턴의 엘리트들은 해외로 생산을 이전하여 글로벌 차익 거래로 수익을 올리는 데 열을 올렸다.
◆제조업 중심 중국, 베트남, 멕시코로 이동
그 결과 전 세계 제조업의 중심이 중국, 베트남, 멕시코 등으로 이동했다. 이들 나라에서는 기업들이 취약한 노동자들을 착취하거나 정부의 광범위한 지원을 받았다.
그동안 미국은 역사상 가장 큰 무역적자를 기록했고 미국의 산업 역량과 고용 능력이 광범위하게 상실됐으며 전략적 공급망의 적국 의존이 심해졌다.
미국은 경제적, 국가안보적 필요를 국제 합의에 종속시켰다. 그 결과 높은 임금을 제공하고 혁신을 촉진하며 투자를 유도하는 제조업이 약화돼 미국 노동자, 그들의 가족, 지역사회가 피해를 입었다.
브레튼우즈에서 전쟁으로 붕괴된 글로벌 무역 시스템을 재건하려는 노력에 따라 9차례에 걸친 무역 협상이 진행됐고 우르과이 라운드를 거쳐 WTO 체제가 출범했다.
우리는 지금 ‘트럼프 라운드’를 목격하고 있다.
지난 4월2일,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적자가 야기한 국가적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이후 워싱턴, 제네바, 제주도, 파리, 런던, 스톡홀름, 턴베리 등 여러 곳에서 치열한 양자 협상이 벌어졌다.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경제 및 안보 문제에 협조하며, 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무역 균형을 재조정하는 데 이처럼 큰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몇 달 만에 미국은 수년 동안의 협상에서보다 더 많은 외국 시장 접근을 확보했다.
미국의 제조 역량과 노동력을 약화시킨 수십 년의 해로운 정책을 뒤집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미국의 재산업화를 위해 여러 세대에 걸친 프로젝트가 필요하며, 시간이 부족하다.
지난 6월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 참석한 각국의 무역장관들이 거시경제 불균형의 위험, 비시장적 관행의 위협, 세계 무역 체제의 경직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는 트럼프가 수년 간 제기해온 끝에 본격적으로 해결에 나선 문제들이기도 하다. 브뤼셀, 제네바, 워싱턴의 자유무역 근본주의자들이 오랫동안 이단시했던 것들이 이제는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주 폰 데어 라이옌 EU 집행위원장이 경제·정치적 현실에 맞춰 세계 무역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요청에 동조했다. 그는 대서양 경제 관계가 “더 지속가능해질 수 있도록” “재균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미와 무역협정 맺은 나라들, 무역질서 재편 필요성 동의
미국 전체 무역의 약 40%를 차지하는 영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필리핀, 한국, 태국, 베트남과 맺은 협정도 같은 인식을 토대로 한다.
과거 미국은 각국의 무역 장벽 해소를 위해 미국의 제조업을 보호하는 관세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가 이 공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제 미국은 해외 장벽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면서도 미국 산업에 대한 관세 보호를 확보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국 핵심 공급망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로 함으로써 경제안보 협력을 약속했다.
각국은 미국 노동자와 생산자를 불리하게 만든 글로벌 임금 차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전 세계적 노예 노동 퇴치라는 목표가 트럼프의 관세 덕분에 실질적으로 진전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각국은 또 자원 효율성과 환경법 집행 개선에 동의했다. 이에는 불법 벌목, 불법 어업, 불법 야생동물 거래 같은 가장 문제가 되는 분야가 포함된다.
이런 약속들이 실질적으로 실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과거의 지지부진한 무역 분쟁 해결 절차 대신 새로 맺은 협정의 이행을 면밀히 감시하고 필요하면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실행되도록 할 것이다.
트럼프는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있는 소비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강력한 당근이며, 관세는 강력한 채찍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미국 적대국들이 현 무역 체제 선호
미국의 적대국들은 미국의 무역 적자를 확대시키고,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산업 역량을 갉아먹는 현 체제를 선호한다.
국제 무역의 규칙이 자살 협약이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맺은 여러 협정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국의 생산 역량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동반한다. EU는 6000억 달러, 한국은 3500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했다. 2차 대전 직후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의 10배에 달하는 이들 투자가 미국의 재산업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한국은 비시장 경쟁으로 쇠퇴한 미국 조선 산업을 되살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투자는 미국 에너지, 농업, 국방, 산업 제품에 대한 구매 약속과 별개이며, 이들의 누적 규모는 거의 1조 달러에 이른다.
미국 제품에 대한 수요 증가와 미국 제조업 투자 증가에 따라 전략 산업 분야의 미국 제조업이 다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비상사태다.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시간을 낭비할 여유는 없다.
브레튼우즈 회의로부터 WTO 창설까지 50년이 걸렸고 그로부터 다시 30년이 흘렀다. 트럼프 라운드의 시작으로부터 130일도 채 되지 않은 현재, 턴베리 체제는 완성되지는 않았으나 분명히 구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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