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첫날 ‘오바마 英절친’과 낚시한 밴스…이념-국경 넘는 전략적 우정 주목 [트럼피디아]〈36〉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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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남동쪽 켄트에 있는 외교장관 공식 시골 관저 ‘체브닝 하우스’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 밴스(왼쪽)와 래미. 켄트=AP 뉴시스
여름 휴가의 첫 일정으로 J D 밴스 미국 부통령(41)이 영국의 데이비드 래미 외교장관(53)의 시골 관저를 찾았다. 8일(현지 시간) 두 사람은 관저 뒤 연못에서 잉어 낚시를 했고, 이후 함께 미사에 참석했다. 마가 운동의 유력한 후계자인 밴스와 좌파 성향 노동당 소속인 래미의 정치적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이 주목을 받고 있다.

● 英-美 다리 놓은 ‘가교 정치’
래미는 런던 남동쪽 켄트에 있는 외교장관 공식 시골 관저인 ‘체브닝 하우스’에 밴스의 가족을 이틀간 초대했다. 8일 휴가 겸 영국을 찾은 밴스는 잉글랜드 코츠월드와 스코틀랜드로 이동해 미군 기지 방문, 정치 자금 모금 행사 등 공식 일정을 이어갈 계획이다.

밴스는 글로벌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능가할 정도의 날 선 동맹국 비판으로 ‘공격견’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번 회동에서는 한층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다.

올해 2월 뮌헨안보회의와 곧이어 백악관을 찾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회담에서는 “영국의 기술 플랫폼 규제는 검열”이라며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이날 체브닝 하우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관련 질문에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았다. 영국 기술 플랫폼 규제에 대한 우려를 묻자 “몇 가지 비판을 제기해 왔지만, 이 문제가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방 전체가 직면한 사안”이라고 했다.

오전 낚시 후 회담을 가진 양측이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관세 협상 등 각종 현안을 의논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밴스가 우정을 통해 양국 관계에 다리를 놓는 시도를 했다.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가교(架橋)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 어려운 유년시절-신앙심 공통점
두 가족은 115개의 방과 미로와 호수를 갖춘 체브닝 하우스에서 첫 일정으로 낚시를 했다. 밴스 가족은 모두 잉어를 잡았지만 래미는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이후 응접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밴스는 둘의 인연을 설명했다.

8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남동쪽 켄트에 있는 외교장관 공식 시골 관저 ‘체브닝 하우스’에서 기자 회견 도중 래미(왼쪽)와 밴스가 밝게 웃고 있다. 켄트=AP 뉴시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밴스가 2023년 상원의원에 취임한 직후였다. 밴스는 “우리 둘이 다른 정치 스펙트럼에 속하지만, 그가 워싱턴 방문 중 시간을 내어줘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정기적으로 만나왔다. 최근 워싱턴에서도 비슷하게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함께 놀았고, 두 사람은 미사에 함께 참석했다. 밴스는 “데이비드와 정말 좋은 친구가 됐다. 가족들끼리도 잘 어울리니 도움이 된다”고 했다.

둘은 깊은 신앙심과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낸 노동자 계층 출신이라는 공통점으로 가까워졌다. 래미는 1985년 폭동으로 어지러웠던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 성장했다. 부모는 그가 10대일 때 이혼했고,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미국으로 떠난 뒤 미국에서 사망했다. 밴스 역시 약물 중독을 겪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두 사람은 변호사 출신 젊은 정치인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래미는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를 졸업한 뒤 22세에 영국 최연소 변호사가 됐다.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영국 흑인 최초로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이때 같이 학교를 다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는 절친이 됐다. 유명 초상화가인 래미의 부인이 2008년 대선 유세를 동행하며 초상화 연작을 그리기도 했다. 밴스는 해병대 복무 후 하버드대의 라이벌 예일대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래미는 2000년 최연소 하원의원이 됐고, 밴스는 2023년 상원의원이 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래미(왼쪽)을 밴스가 바라보고 있다. 켄트=AP 뉴시스
래미는 둘의 우정에 대해 “우리는 정치적 토론과 논쟁을 즐긴다”고 했다. 특히 노동자 계층의 삶에 대한 깊은 우려를 공유한다고 했다. 밴스는 “엄청난 긴장 상태에 있는 세상에 더 큰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자”는 래미의 말에 마음이 움직여 둘이 의기투합하게 됐다고 했다.

래미는 5월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식에서 밴스에게 새로운 친구도 소개했다. 밴스와 래미, 안젤라 레이너 영국 부총리는 이탈리아 주재 미국 대사의 관저에서 얼음 넣은 로제 와인을 마시며 친해졌다. 셋은 ‘문제 많은 어린 시절을 보낸 노동계급 정치인’이라는 접점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했다. 래미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아주 멋진 한시간 반을 보냈다”고 했다.

● “트럼프 시대에 걸맞는 전략적 우정” 평가도
2023년 시작된 둘의 우정은 지난해 큰 변곡점을 맞았다. 노동당이 총선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며 14년 만에 집권을 눈앞에 뒀던 지난해 5월 래미는 워싱턴을 찾아 민주당과 공화당 인사들을 만났다. 밴스를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과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등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핵심으로 꼽히는 인물들과 회동했다.

래미는 과거 트럼프 대통령을 “네오나치 성향의 소시오패스” “위험한 광대”라고 불러 트럼프 대통령 측과 관계가 껄그럽지 않겠나는 우려도 컸으나, 미국 방문 당시 이를 정면 돌파했다. 워싱턴 보수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서방 세계 정치인 중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에둘러 말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오해 받는 지도자”라고 했다. 유럽이 보다 강한 방어 태세를 갖추길 원하는 것이나 이를 ‘미국이 유럽을 버리겠다’는 위협으로 오독됐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선량한 크리스천이자 소규모 보수주의자로 공화당과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2개월 뒤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며 래미는 외교장관이 됐고, 밴스는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그런데 직후 밴스가 내놓은 발언이 영국에서 큰 논란이 됐다. 밴스가 한 보수 행사 연설에서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영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최초의 이슬람 국가가 됐다”고 농담했는데 이를 두고 노동당의 이민 정책을 겨냥한 비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밴스가 노동당의 이민 정책 기조가 영국 내 무슬림 인구를 늘려 영국을 ‘이슬람 국가’로 만든다는 논리를 펼치자 밴스를 친구라고 불렀던 래미도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래미는 “비슷한 배경 덕분에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고 나토를 비판해온 밴스와 외교 정책에서도 일부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두둔했다.

전문가들은 영국이 가자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처리 과정에 대한 이견, 관세 후속 협상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방위비 문제 등을 둘러싼 미국과의 긴장을 관리하는 데 래미가 쌓은 우정이 도움이 된다고 제언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브론웬 매독스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고위급 인사와의 개인적 관계가 특히 중요하다”고 BBC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수의 측근을 기용해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핵심 인사가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각국이 정부 차원의 인맥 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는 뜻이다.

36화 요약: J D 밴스 미국 부통령과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교장관은 정치 성향 차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아왔다. 둘은 어려운 유년 시절, 강한 신앙심,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정기적으로 만나며 외교안보 현안에서 접점을 찾는 ‘가교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래미의 이러한 인맥이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외교 현안을 조율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데 전략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가 아카이빙한 미니 히어로콘텐츠 ‘트럼프 2.0 폴리시 맵’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한 눈에 확인하세요.

https://original.donga.com/2025/trump_policy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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