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작전 같은 美 이민 당국 ‘급습’…수갑 찬 기업인들 모습에 ‘충격’
트럼프 개입으로 교착 풀린 협상…316명 탑승 전세기 오늘 인천 도착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체포·구금된 우리 국민 316명을 태울 대한항공 B747-8i 전세기가 지난 1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다. 2025.9.10/뉴스1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초유의 한국인 구금 사태는 치열한 한미 간 교섭 끝에 수습 국면을 맞았다. 총 316명의 우리 국민은 12일 대한항공 전세기를 이용해 귀국한다.
지난 4일(현지시간) 이번 사태가 발생한 지 약 일주일만이며, 8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에 급파돼 석방 교섭을 시작한 지 닷새 만이다.
군사작전 방불케 하는 美 이민 당국 ‘급습’…수갑 찬 기업인 모습에 韓 ‘충격’
지난 4일(현지시간) 미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은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현장에 나타나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했다. 장갑차에 헬기까지 동원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은 기습적으로 진행됐다.
이민 당국은 한국인 근로자 317명을 체포했다. 적법하지 못한 비자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대규모의 한국인이 비자 문제로 미국 당국에 적발된 것도 처음인 데다가, 특히 대부분이 사슬과 수갑으로 속박된 모습이 공개되며 한국 여론에 큰 충격을 안겼다. 대미 투자를 독려하는 미국이 ‘제조업 협력’의 상징인 장소에서 한국인 300여 명을 체포한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뒤통수 행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외교부는 곧장 현장대책반을 가동하고 조현 외교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재외국민 보호 대책본부를 설치해 총력 대응에 돌입했다. 이같은 사태는 한국의 입장에서도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데부터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은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대리에게 우려와 유감을 전달했다. 미국 국무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엘리슨 후커 국무부 정무차관이 박윤주 외교부 1차관에게 먼저 통화를 요청하는 등 사건 초기 정돈되지 않았던 한미 간 소통도 빠르게 정비, 가동됐다.
미국에선 조기중 주워싱턴 총영사를 비롯한 현장대응반이 현장으로 급파됐다. 구금 시설에 갇힌 우리 국민을 면담하며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우리 국민의 건강 상태 등을 살피는 등 영사 조력이 이뤄졌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공개한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단속 장면. (ICE 홈페이지) ‘트럼프 입’에 긴장한 정부, 이례적인 외교부 장·차관 동시 방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사태 초기엔 구금된 우리 국민들이 ‘불법 체류자’일 것이라며 “이민 당국은 할 일을 한 것”이라는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이번 사태가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미 이민 당국은 5일 이민세관단속국 홈페이지를 통해 단속반이 한국인 근로자들을 사슬로 묶고 수갑을 채워 중범죄자를 다루듯 체포하는 영상과 사진을 올려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구금된 우리 국민이 대규모로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면 한미관계에는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미의 여론이 모두 미국의 조치가 과도하고, 특히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미 투자 심리를 위축하고 외교적으로도 미국에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고 지적하자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도 바뀌었다.
지난 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여러분의 투자를 환영하며,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위대한 기술을 지닌 뛰어난 인재들을 ‘합법적으로’ 데려오도록 장려한다”며 “우리는 신속하게 그것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해 ‘단속이 능사’라는 태도에서 ‘비자 제도의 모순을 고치겠다’며 태세를 전환했다.
정부도 사태 발생 사흘 뒤인 지난 7일 석방 교섭이 잘 진행 중이라면서, 우리 국민 송환을 위한 전세기가 곧 미국으로 출발한다고 밝혔다. 이때만 해도 미국의 강경한 태도가 꺾였고, 한미 간 협상은 순탄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8일 조현 장관이 워싱턴 D.C.로 급파되며 ‘한미 협상에 문제가 생겼다’라는 관측이 나왔다. 정부는 조 장관의 파견 다음 날인 9일 박윤주 1차관까지 애틀랜타로 보냈는데, 외교부 장관과 차관이 한 사안에 ‘동시 대응’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조 장관은 구금 관련 협상을 마무리한 지난 10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사안을 초유의 사태로 인식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미국에 왔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출국 직전 미국 측 사정으로 ‘연기’…안도하긴 일렀다
조 장관이 미국으로 간 뒤 한미는 우리 국민을 ‘강제 추방’이 아닌 ‘자진 출국’ 형식으로 미국을 떠나게 하는 데 합의하고 일단 10일(현지시간) 오후 2시 30분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전세기를 띄우는 데 합의했다. 이 상황에서도 우리 국민들의 미국 재입국 시 불이익 부과 면제 문제는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
정부는 미국 재입국에 문제가 생긴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위대한 기술을 지닌 뛰어난 인재’를 미국이 데려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미국 행정부 내의 기류가 좀 이상했다. 이민 당국의 태도가 생각보다 강경해, 국무부와 이견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귀국 전세기가 미국을 떠나기 불과 12시간 전, 돌연 외교부는 ‘미국 측의 사정’으로 우리 국민의 귀환 일정이 연기됐다고 밝혔다. 연기 이유와, 변경된 전세기 운항 일정 등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밝혀진 이유는 두 가지였다. 미 이민 당국이 구금 한국인의 공항 송환을 자신들이 진행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수갑 등의 속박 도구를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꺾지 않으면서 한미 간 이견이 발생했고, 이 사안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에 기조를 바꾼 트럼프 대통령이 ‘숙련된 한국인 근로자들이 출국하지 않고 바로 미국에서 계속 일하면 안 되느냐’라고 제안하면서 출국 절차가 전면 중단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가 출국 중단 거의 하루 뒤에야 확인되면서 그사이 또 한번의 혼란과 불안감 증폭은 불가피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조 장관에게 백악관에서 만나자고 했다. 제기된 몇 가지 사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빠르게 받아내고, 한미 소통 과정에서 다른 요인이 개입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를 통해 조 장관은 “우리 국민이 우선 귀환한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겠다”라는 입장을 전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측 요청대로 수갑 등 신체적 속박 없이 구금시설에서 공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라고 지시하면서 구금 사태가 비로소 해결됐다.
구금 일주일 만에 석방…12일 오후 3시 23분, 무사히 한국 도착
한미의 합의에 따라 11일(현지시간) 구금됐던 한국인 317명이 모두 석방됐다. 이 중 1명은 가족이 영주권자로, 미국에 남기로 해 316명이 귀국길에 올랐다.
이들은 버스 8대에 나눠타고 8시간을 달려서야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친 여정에도 밝은 표정으로 전세기에 오른 316명의 국민들은 현지시간으로 11일 오전 11시 38분께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전세기는 한국시간 12일 오후 3시 23분쯤 인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전세기엔 외국인 근로자 14명을 포함해 총 330명의 근로자가 탑승했다. 사태 수습을 위해 현지에 급파된 박윤주 1차관,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 등 정부·기업 관계자도 동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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