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의 긴축 재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펼쳐진 18일 파리 바스티유 광장. 건축업에 종사하는 다니엘 레방트 씨는 기자에게 마크롱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우리는 할 만큼 했다. 세금은 부자에게’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가한 레방트 씨는 “서민들은 매월 초 세금을 내고 나면 10일이면 이미 돈이 없다. 항상 빈털터리다. 마크롱 정부는 우리의 시스템을 파괴했고 우리의 금고를 턴 도둑”이라고 일갈했다.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긴축 반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며 행진하고 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18일 프랑스 전역에선 50만 명(내무부 추산, 노조 측 추산 10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긴축 반대’ 시위를 펼쳤다. 10일 1차 ‘국가 마비’ 시위에 이은 2차 시위가 펼쳐진 것이다.
프랑스 주요 노조가 주도한 파리 바스티유 집회에는 철도, 의료, 교사 등 약 6만 명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들, 10대 학생들도 집회에 가담했다. 시위대는 프랑스혁명의 발상으로 프랑스 시민사회운동의 상징인 파리 바스티유 광장을 출발해 레퓌블리크 광장을 거쳐 나시옹 광장까지 행진했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700건의 시위가 발생했다. 일부 지역에선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기도 해 309명이 체포됐고 134명이 구금됐다. 온라인상에선 프랑스 경찰이 시위에 참가한 여성을 밀치는 영상에 확산돼 공분을 사기도 했다.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긴축 반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며 행진하고 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집회 참가자들은 마크롱 정부의 긴축 재정안 중단을 가장 먼저 요구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강성 노조 ‘노동총동맹(CGT)’ 스미나 스나치 사무총장은 “정부는 가장 가난한 사람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앗아 가장 부유한 사람에게 주고 있다. 세금은 부자들에게 더 걷어야 하고, 모든 긴축 조치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회(하원) 불신임으로 물러난 프랑스와 바이루 전 총리에 이어 임명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신임 총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세바스티앵 총리는 바이루 전 총리가 추진하던 ‘공휴일 폐지안’을 유보했지만, 야당과 시민들은 “이 조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반발하고 있다. 소피 비네 씨는 “새 총리도 마크롱의 후계자로 뿔난 총리에 불과하다. 그는 전쟁에 돈을 쓸 것이고, 우리는 그 안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는 총파업과 함께 진행됐다. 특히 파리교통공사(RATP) 4대 노조가 운행하는 파리 지하철은 자동 운행되는 3개 노선(1·4·14호선)만 정상운행되고, 나머지는 대부분 운행을 중단했다.
교육 현장도 차질을 빚었다. 프랑스 교육부에 따르면 전체 교육부문 직원의 14%(노조원의 45%)가 시위에 참여했다. 이에 프랑스 학교 상당수가 문을 닫기도 했다. 약국, 물리치료실 등 의료시설도 문을 닫거나 단축 운영을 했다.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긴축 반대 시위에서 한 참가자들이 ‘그(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는 똥만 싼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노조 측은 19일경 총 회의를 거쳐 다음 시위 일정을 논의할 계획이다. 세바스티앵 총리는 시위대의 요구를 전폭 수용하겠다며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성명을 통해 “노조 대표들이 제기하고 시위대가 행진에서 전달한 요구사항들은 내가 시작한 협의의 핵심“이라며 대화에 열려있다”고 말했다. 다만 “폭력은 합법적인 정치적 행동 수단이 아니다. 용납해선 안 된다”며 엄중 대응을 선언했다.
다만 집회 현장에선 8월 휴가철이 끝나자마자 대규모 파업이 진행되는 것에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파리의 한 교사는 “프랑스 사람들은 정말 노는데 진심인거 같다”며 “학생들의 수업권을 희생시킬 정도로 파업이 절실한 상황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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