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영국 국빈 방문에 앞서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와 의약품에 자동차(25%)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2기 행정부가 외국인 전문직 근로자를 위한 ‘H-1B’ 비자 수수료를 1인당 연간 10만 달러(약 1억4000만 원)로 대폭 증액하기로 했다. ‘H-1B’ 비자는 고숙련 기술직에게 발급되는 비자로, 추첨을 통해 매년 약 8만5000건이 발급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세계 인재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티켓으로도 꼽힌다. 하지만 수수료를 기존보다 100배 더 비싸게 받으면 기술 부문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H-1B 비자 프로그램을 이같이 개편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고 이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모든 대기업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며 “누군가를 훈련 시키려면 미 전역의 위대한 대학 중 한 곳에서 최근 졸업한 사람을 훈련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인을 훈련시키면 된다”며 “우리 일자리를 빼앗을 사람을 데려오는 것을 그만두라”고 했다.
‘H-1B’ 비자의 기존 신청 수수료는 1000달러(약 140만 원)이다. 하지만 이를 10만 달러로 크게 올리는 것이다. 러트닉 장관은 “핵심은 연간”이라며 “6년까지 적용된다”고 했다. 해당 비자로 6년간 체류한다면 60만 달러(약 8억4000만 원)를 내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해당(H-1B 비자로 들어오는) 인물이 회사와 미국에 매우 가치있는지, 아니라면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회사는 미국인을 고용할 것”이라며 “이것이 이민정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1990년 시작된 H-1B 비자 제도로 미국 기업들은 낮은 임금을 주고 외국에서 전문직 근로자를 고용해왔다. 자료에 따르면 해당 비자는 인도·중국인의 발급 비중이 높았다. 지난해 H-1B 비자 전체 발급의 71%가 인도인, 11.7%가 중국인으로 나타났다. 2025년 상반기에 아마존은 1만 개 이상의 H-1B 비자가 승인됐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은 각각 5000개 이상의 H-1B 비자를 발급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비자가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결정을 두고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캐피털인 멘로벤처스 소속 파트너 디디 다스는 X(엑스·옛 트위터)에 “새로운 수수료를 추가하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인재를 미국으로 데려오려는 의욕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미국이 최고의 인재를 데려오는 것을 중단한다면 혁신과 경제 성장 능력이 크게 감소한다”고 지적했다. 또 소규모 기술 기업과 스타트업의 비용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국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미국 정착 관련 한 카페에선 “세계적으로 대단한 인재가 아닌 이상 누가 1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서 외국인을 입사 시키겠느냐”며 “그냥 외국인 직원을 받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또 “마가(MAGA)가 아닌 막가” “흥선트럼프 대원군이냐, 신 쇄국정책을 미국에서 보게 될 줄이야” 등 혀를 찼다. “비자 장사하네” “자국 기술자들로 잘해보라” “미국이 스스로 고립되는 걸 자초하네” 등 격양된 반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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