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베이징에서 열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경사무소 설립 30주년 기념 국제 세미나’에서 한중 전문가들이 토론하는 모습.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격화된 미중 통상 갈등과 한중 경제 역학 구조의 변화 속에 한중 간 새로운 협력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이 나왔다.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북경사무소가 개최한 설립 30주년 기념 국제세미나에서 이시욱 KIEP 원장은 “지정학적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한국-중국 간 협력은 오히려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은 한중 양국이 협력해야만 지역 경제의 안정과 번영은 물론 대외 충격에 공동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한중 전문가들은 한중 무역 및 협력 구조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는 점에는 인식을 같이 했다.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은 과거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했고, 이후에는 소비 시장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첨단 제조 분야 경쟁력이 급성장하면서 상호보완성보다는 경쟁 분야가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양국이 경쟁적 측면만 부각시키며 갈등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호 발전적인 관계로 전환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정지현 KIEP 중국 팀장은 “한중 기업이 우수한 기술을 협력해 더 뛰어난 국제 경쟁력을 갖추거나, 중국의 기술력에 한국 자본이 투자하는 등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고령화와 친환경 관련 인프라 등 한중 양국이 공동으로 처한 사회 문제를 대표적인 협력 분야로 꼽았다.
다만 중국이 적극적인 대외개방을 추구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작 외국인 투자가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 팀장은 “중국이 발전과 함께 국가 안보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면서 “중국 내 투자환경이 외국 기업에게 비친화적으로 작용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양국의 공동 발전을 위해서는 상호간 비관세 장벽을 최소화하고, 지식재산권 보호 등 공정한 경쟁과 협력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한다고 덧붙였다.
황재원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은 제조업의 협력 파트너이자 ‘테스트베드’로서의 중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황 본부장은 “중국의 경제 구조와 기술력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 중국 시장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면서도 “이제 중국을 과거처럼 노동력이 싼 생산기지가 아니라 생산 파트너로 인식해야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비해 각종 산업의 공급망이 잘 갖춰진 중국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해도 국내에서는 저렴하고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기 어렵다”면서 “중국의 인프라를 활용하면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고 시장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의 히든 챔피언 기업격인 ‘전정특신(專精特新, 전문화·정밀화·특색화·혁신화)’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 그리고 실버 산업처럼 중국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 비해 기술력이 낮은 소비 시장을 노려야한다고 조언했다.
중국 측 전문가들도 한중 협력의 중요성을 강하게 피력했다. 왕쉐쿤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경제합작연구원(CAITEC) 원장은 “디지털 경제, 녹색 전환 등 신흥 분야에서의 한중 협력을 확장하고 경제통상 세미나 등 싱크탱크 교류를 통해 더 많은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리샹양 중국사회과학원 아태글로벌전략연구원 원장은 “한중일 FTA를 더 진전시킨다면 양국 뿐 아니라 아시아 전 지역의 경제 협력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 원장은 이어 “한국이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신유라시아 육교’ 건설 등에 동참하면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유럽과의도 협력도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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