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 출신 장관-쇼맨 대통령의 무대”… ‘軍 마가화’ 우려 커진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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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800명 불러모은 지휘관회의
안보-국방전략 비전 제시 대신
“인종 기회평등 개편” “뚱보 아웃”
트럼프 “핵역량 강화 등 1조달러 투자”… 각국 군비 확장 경쟁 불붙일 우려

지난달 30일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 기지에서 열린 ‘전군 장성급 지휘관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콴티코=AP 뉴시스
지난달 30일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 기지에서 열린 ‘전군 장성급 지휘관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콴티코=AP 뉴시스
“폭스뉴스 진행자 출신 장관(헤그세스)과 리얼리티쇼 출신 대통령(트럼프)을 위한 무대였다.”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주재한 ‘전군 장성급 지휘관 회의’가 주요 언론과 야당 민주당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이 1성 준장 이상의 군 지휘부 800여 명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안보 및 국방 전략의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에 좌파 이념 척결을 강조하는 ‘훈시성 연설’로 일관한 탓이다. 이들은 약 2시간 동안 장군들을 상대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DEI(다양성·형평성·포용) 정책과 ‘워크(woke·깨어 있다는 뜻·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비꼬는 말)’를 없애겠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주요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뒤 군의 정치화가 우려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로이터통신은 두 사람이 모두 과거 TV 진행자로 활동했다는 점을 들어 “정부 행사를 자신들의 무대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시사매체 디애틀랜틱은 대통령의 정치 구호 겸 지지층을 뜻하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거론하며 “군의 ‘마가화’를 위해 세금으로 군인들을 모아 값비싼 행사를 치렀다”고 질타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러시아와 비교하며 “핵 역량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또 내년에 군사력 증강을 위해 1조 달러를 투입할 계획도 설명했다. 세부 전략과 계획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국과 러시아 등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핵 전력 증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실제 조치로 이어질 경우 군비 경쟁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 헤그세스 “수염 있고 뚱뚱한 군인 아웃”

이날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대 기지에서 개최된 행사에서 헤그세스 장관은 약 45분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의 DEI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너무나 많은 군 지도자를 인종, 성 등의 잘못된 이유로 진급시켰다”며 “군의 기회 평등 제도를 전면 개편하겠다.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군인의 외모 역시 중요하다”며 수염, 긴 머리 등 자신이 생각하는 ‘군인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외양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외쳤다. 체력단련(PT) 훈련 또한 의무화하겠다며 “뚱뚱한 군장병을 보는 일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전투 병과의 여성 군인에게는 남성 군인과 동일한 체력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장군들을 향해 “나의 말들이 당신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면 사임해야 한다”며 대규모 물갈이도 시사했다.

뒤이어 등장한 트럼프 대통령도 약 1시간 13분 동안 비슷한 내용의 연설을 했다. 그는 “모든 것이 능력에 기반한다. 정치적 이유로 누군가 여러분의 자리를 차지하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최근 ‘국방부’를 ‘전쟁부’로 개칭한 것을 두고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우리의 목적, 정체성, 자부심을 재확인하기 위해서”라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의 핵 역량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나는 이미 우리의 핵전력을 재건했다. 그것을 계속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가 그것(핵전력)을 결코 사용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이 잠수함 기술에서 러시아와 중국에 비해 25년 앞서 있다면서도 “그들이 따라오고 있고, 핵도 그들이 훨씬 뒤처져 있지만 5년 후에는 같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 역량에 대한 우려를 내비친 것이며, 특히 최근 핵탄두와 잠수함 등을 늘리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 장성들 연설 내내 ‘무표정’ 일관

전체 미군의 준장 이상 지휘관급 장성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는 모습. 콴티코=AP 뉴시스
전체 미군의 준장 이상 지휘관급 장성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는 모습. 콴티코=AP 뉴시스
헤그세스 장관은 2000년대 초 미네소타주 주방위군에서 소령으로 잠시 근무했다. 이런 영관급 장교가 수십 년간 전투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수많은 고위 장성에게 훈계하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해병대 장교 출신인 엘리엇 애커먼은 NYT에 “고급 장교들에 대한 정신 나간 모욕”이라고 분노했다. 전쟁사 연구의 권위자인 엘리엇 코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석좌교수는 “헤그세스는 주방위군 소령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며 “그에게는 군사 동맹 관리, 핵잠수함 정비, 공중작전 명령 개발 등보다 팔굽혀펴기, 턱걸이 등이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두 시간 내내 무표정한 얼굴에 침묵을 유지해 주목받았다. 군인의 정치 중립 원칙을 어겼다는 논란 촉발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피트 헤그세스#도널드 트럼프#전군 장성급 지휘관 회의#마가#마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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