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28일 백악관에서 찰스 3세 영국 국왕와 카밀라 왕비를 맞고 있다.2026.04.29 워싱턴=AP 뉴시스
“최근에 미국이 아니었으면 유럽 국가들은 독일어를 쓰고 있었을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저희가 아니었으면 당신은 프랑스어를 쓰고 있었을 겁니다”
2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찰스 3세 영국국왕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던진 농담이다. 영국이 아니었으면 미국은 프랑스에 식민 지배를 당했을 것이라는 뜻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기여를 기억하라는 취지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맞선 것이다.
다른 정상들 같으면 트럼프 대통령의 면전에 들이밀기 힘든 농담이었다. 평소 왕실에 대한 선망을 드러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웃어 넘겼다. 그는 모친인 엘리자베스 2세가 1957년 양국의 관계 회복을 위해 방미했던 일도 언급했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반발한 영국이 군사행동에 나서고 미국이 반발하면서 양국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 모친이 방미해 관계 복원에 성공했던 일을 꺼내 든 것.
찰스 국왕은 “거의 70년이 지나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나리라고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란 전쟁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을 연일 비난해온 상황을 꼬집는 농담이었다.
이날 미 뉴욕타임스는 찰스 국왕이 영국 특유의 절제된 표현, 트럼프 대통령에 맞춘 농담 등을 던지며 현란한 외교를 펼쳤다고 전했다. NYT는 찰스 국왕처럼 트럼프 대통령을 다룰 수 있는 외국 정상급 인사는 드물다면서 보석 반지를 낀 찰스 국왕의 손에 트럼프 대통령이 꼭두각시처럼 놀아나는 것처럼 보였다고 평가했다.
찰스 국왕은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워주는 선물도 잊지 않았다. 1944년 진수돼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영국의 잠수함 HMS 트럼프호에 걸려있던 황금 종을 트럼프 대통령에 선물했다. 종에는 ‘트럼프 1944’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물이 공개되자마자 자리에 벌떡 일어나서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종을 들여다봤고, 이내 더없이 기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고 NYT는 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역시 뼈 있는 말로 응수했다. 찰스 국왕에 앞서 건배사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지금 중동에서 약간의 일을 하고 있는데 아주 잘 되고 있다”며 “우리는 그 적이 핵무기를 갖도록 절대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고 찰스는 나보다도 더 내 의견에 동의한다”고 했다. 이란과의 전쟁을 언급한 것으로, 영국에서는 실권이 총리에 있기에 왕실은 국왕이 현안에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라는 표현을 쓰며 찰스 국왕이 피하고 싶은 상황을 연출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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