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뉴스 속 ‘유명인의 죽음’과 생명 중시하는 언론 보도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7일 03시 00분


하상훈 생명의전화 원장(정신건강정책혁신위원회 캠페인전문위원장)

하상훈 생명의전화 원장(정신건강정책혁신위원회 캠페인전문위원장)
하상훈 생명의전화 원장(정신건강정책혁신위원회 캠페인전문위원장)
유명인의 자살은 개인적인 비극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에 큰 충격과 상처를 남긴다. 가족과 친구는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사로잡히고 팬과 시민도 깊은 허탈감과 무력감에 빠진다. 언론은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유명인의 자살을 주요 뉴스로 다루지만 자살 보도는 다른 사건과 같은 방식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잘못된 보도가 사회학습 효과를 유발해 자살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홍진 성균관대 의대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유명인 한 명이 자살한 뒤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자살자가 25.9% 증가했고 20, 30대 여성의 모방자살 위험은 1.6배 높아졌다. 유명한 사람의 죽음 등에 심리적으로 동조해 자살 시도가 잇따르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말하는데, 자살 보도가 유사한 행동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블로그 등에는 자살 방법과 장소, 동기를 구체적으로 보도하고 감성적인 문구로 자살을 미화하는 내용이 게시되고 있다. 고인의 사생활이나 장례 절차를 실시간으로 전하거나 사망 이후 자살 동기를 추측해 유족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례도 있다. 생명존중희망재단에 따르면 자살 관련 보도는 2018년 1037건에서 2023년 4728건으로 약 3.5배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언론이 자살 보도 기준을 위반해 언론중재위원회와 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각각 226건, 482건의 시정권고를 받았다.

보건복지부와 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기자협회는 지난해 11월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개정한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을 발표했다. 주요 원칙은 다음과 같다. △자살 사건은 가급적 보도하지 않는다. △방법과 장소, 동기를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는다. △고인과 유족의 인격과 사생활을 존중한다. △자살예방 정보를 반드시 함께 제공한다. 자살예방 보도준칙에는 SNS, 블로그 등 1인 미디어에도 같은 책임이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중요한 진전이다.

자살 보도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보호요인이 될 수도 있다.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삶을 선택한 사례를 보도하면 오히려 자살률이 감소하는 ‘파파게노 효과’가 나타난다는 연구도 있다.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언론이 적극 전달할 때 절망에서도 희망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생명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다. 언론이 자살 문제를 보도할 때 그 생명의 무게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극적인 보도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보도, 고통의 끝이 아닌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보도가 필요하다. 그럴 때 언론은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를 넘어 생명을 지키는 방파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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