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신체적·정신적·정서적으로 더 건강하게 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많은 사람이 믿는다. 이른바 ‘부부 자원 모델’(marital resource model) 이론이다. 사회적·경제적·심리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배우자가 그 누구보다 가까이 있어 건강과 참살이(웰빙)를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과학도 이를 뒷받침 했다. 2017년 영국 런던 대학교 연구진은 미혼자가 기혼자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이 42% 높다고 발표했다. 사회적 상호작용 기회가 적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만 50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미시간주립 대학교와 텍사스 공과대학의 연구에서도 미혼자가 기혼자보다 치매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는 결과를 얻었다. 연구진은 중년 이후 미혼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치매 발병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으며, 미혼자의 경제적 자원 감소가 기혼자에 비해 치매 위험이 높은 이유를 부분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고 썼다.
2023년 학술지 노화와 건강(Journal of Aging and Health)에 게재한 노르웨이 연구진의 연구결과도 비슷했다. 44~68세 노르웨이 성인 8700여 명을 대상으로 결혼 여부와 70세 이후 치매 진단을 받을 확률을 조사했는데, 기혼자 대비 이혼자나 미혼자의 치매 진단 위험이 50~73% 높았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런데 일반 대중과 과학계의 통념을 산산조각 내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국립 알츠하이머병 조정센터(National Alzheimer’s Coordinating Center)의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 미혼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결혼 여부와 인지 장애(알츠하이머병 및 루이소체치매 등) 발병 위험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배우자를 잃었거나(사별), 이혼했거나,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기혼자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만한 통계는 다음과 같다.
▽미혼자는 기혼자에 비해 치매 발병 위험이 40% 낮았다. ▽이혼자의 치매 발병 위험은 34% 감소했다. ▽사별한 사람도 27% 낮은 위험을 보였다.
이러한 연관성은 성별, 건강 상태, 생활 습관, 유전적 요인(알츠하이머 치매 위험을 높이는 APOE-e4 유전자 보유 여부 포함) 등 다양한 변수를 조정한 후에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즉, 결혼이 반드시 인지 건강 보호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경우에 따라 치매 위험을 높일 수 있음이 드러났다.
이는 바뀐 시대상을 반영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자들은 현대 사회에서는 친밀함, 동반자 관계, 독립성(자율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기에 결혼의 ‘보호 효과’를 다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연구팀은 중요한 관점을 제시했다. 결혼이 구조적으로 혜택을 줄 수는 있지만, 나이 들어 배우자를 돌보는 부담, 배우자의 질병, 또는 갈등이 지속되는 관계는 오히려 인지 회복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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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이혼자들은 삶의 만족도와 자율성이 증가하면서 신경퇴행을 방어하는 힘이 증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혼이나 이혼 경험이 없는 미혼자의 경우 알츠하이머병과 루이소체 치매(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흔한 퇴행성 치매의 원인 질환) 위험이 낮을 뿐만 아니라 경도 인지 장애에서 치매로의 진행 비율도 낮았다.
이러한 결과는 ‘결혼이 인지 건강에 이롭다’는 기존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율성과 다양한 사회적 관계가 오히려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왜 독신 생활이 뇌에 더 좋을까?
연구자들에 따르면 사회적 역학에 기인할 수 있다. 결혼한 사람은 종종 사회적 관계망이 좁고 상호 작용 수준이 낮은 반면, 미혼 성인은 친구와 취미 활동 모임 등 더 넓고 깊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육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부담과 같은 일상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적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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