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 유사장기 플랫폼 구축
다조직 오가노이드 생체 모델 활용
바이러스 감염 특성-면역 반응 분석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대 규모의 박쥐 오가노이드(유사 장기) 플랫폼을 구축했다. 아시아와 유럽에 서식하는 박쥐 5종에서 4개 기관의 오가노이드를 배양해 다양한 박쥐 조직에서 인수 공통 감염병의 병원체를 실험하는 최초의 실험 모델을 만든 것이다. 박쥐는 다수의 치명적 바이러스 숙주라는 점에서 향후 다양한 감염병 발병 기전을 밝히고 신약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영기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소장과 구본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 교정 연구단장 공동 연구팀이 한국에 서식하는 박쥐에서 유래한 오가노이드를 구축해 바이러스 감염 특성과 면역 반응을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 플랫폼을 개발하고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15일(현지 시간) 공개했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특정 열대 과일박쥐 한 종의 단일 조직 오가노이드를 활용했던 기존의 한계를 넘어 실제에 가까운 환경에서 바이러스의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오가노이드 모델을 구축했다. 박쥐 1종으로부터 기도, 폐, 신장, 소장의 다조직 오가노이드 생체 모델을 만들었다.
이렇게 개발된 박쥐 오가노이드 플랫폼을 활용해 대유행한 감염병들의 감염 경로를 추적했다. 코로나19바이러스(SARS-CoV-2),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MERS-CoV), 인플루엔자A, 한타바이러스 등 감염병의 원인 바이러스가 박쥐의 기관별로 어떻게 감염되는지를 직접 실험했다.
그 결과 같은 바이러스라도 박쥐 종이나 기관에 따라 전혀 다른 감염 양상을 보였다. 예를 들어 특정 박쥐 종의 폐에서 잘 증식하는 바이러스가 다른 종의 신장에서는 전혀 감염되지 않았다. 일부 바이러스만이 인간에게 전염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연구팀은 또 야생 박쥐의 분변 샘플에서 두 종류의 변종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이를 배양·분리하는 데도 성공했다. 포유류오르토레오바이러스(MRV)와 파라믹소바이러스(Paramyxovirus) 계열의 유사샤몬다바이러스(ShaV-like)다. 유사샤몬다바이러스는 기존 일반적인 세포 배양 방식에선 증식되지 않았지만 박쥐 오가노이드에선 효과적으로 증식됐다. 박쥐 오가노이드가 실제 박쥐 장기 환경을 정밀하게 구현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연구팀은 또 기존 3차원(3D) 박쥐 오가노이드를 2차원(2D) 배양 방식으로 개발해 고속 항바이러스제 스크리닝에 적합한 실험 플랫폼으로 확장했다. 3D 오가노이드는 모양과 크기가 균일하지 않아 자동화된 실험이 어렵고 분석과 평가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연구팀이 개발한 2D 플랫폼은 오가노이드 유래 세포를 평평한 배양판에 펼쳐 균일한 세포층을 형성해 실험이 용이하고 분석이 빠르다. 코로나19 치료제로 알려진 렘데시비르 같은 항바이러스 후보 물질의 효과를 빠르게 실험할 수 있다. 최 소장은 “이번에 구축한 세계 최대 규모 박쥐 오가노이드는 글로벌 감염병 연구자들에게 표준화된 박쥐 모델을 제공하는 바이오뱅크 자원으로 중요하다”며 “박쥐 유래 신·변종 바이러스 감시와 팬데믹 대비에 기여하는 핵심 플랫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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