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단비대증 진단과 치료법은
성장호르몬 분비 뇌하수체에 종양 생겨 발병 하는게 95%
국내 환자 100만명 당 약 4명
성장호르몬과 IGF-1으로 진단… 종양 제거후 약물-방사선 치료
희귀질환 말단비대증 치료 환경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는 구철룡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왼쪽)와 엘레나 발라시 유럽내분비학회 희귀질환 위원장 교수.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말단비대증은 내분비 대사질환 중 대표적인 희귀질환이다. 성장호르몬의 과다 분비로 인해 발생 하는데 많은 경우 뇌하수체 종양이 원인이 된다. 말단비대증 국내 환자 수는 1800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 수 100만명 당 약 4명 정도다.
얼굴 모양의 변화, 손발 크기 증가 등 특징적인 증상과 함께 다양한 합병증을 동반해 환자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말단비대증에 대한 인식 부족과 환자 간 교류도 제한적이라 조기 발견과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구철룡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와 엘레나 발라시 스페인 카탈루냐국제대 내분비학 부교수(유럽내분비학회 희귀질환 위원장)를 만나 말단비대증의 진단과 치료에 관해 자세히 물었다.
―말단비대증이라는 질환이 생소하다. 설명 부탁드린다.
구철룡 교수=“성장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상태를 통틀어서 말단비대증이라고 한다. 정상적으로 성장호르몬이 분비해야 하는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겨서 성장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경우가 약 95%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키 성장을 위해 성장호르몬 주사를 많이 맞는데 이 경우에도 불필요하게 너무 많이 공급하면 드물게 말단비대증이 생길 수 있다. 성장호르몬과 관련된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신경 내분비 종양이 생길 때도 말단비대증이 드물게 나타날 수 있다.”
엘레나 발라시 교수=“말단비대증은 뼈와 근육 등 신체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전신 질환이다. 기본적으로는 연조직, 안면, 손, 다리, 발목 등에 증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코를 심하게 고는 것, 목소리가 깊어지는 것, 코가 넓어지고 손이나 발이 커지는 것, 턱 등이 돌출되는 것, 치아 사이가 많이 벌어지는 것, 혀가 너무 커지는 것 등의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갈비뼈 통이 넓어져서 흉곽이 커 보일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악성 종양, 수면무호흡증, 관절 통증, 근골격계 이상,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고혈압과 더불어 뇌하수체 종양이 주위 구조를 압박해 두통, 시야결손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말단비대증에 취약한 군이 있는가? 인종별로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엘레나 교수=“가족력이 있거나 유전적 소인이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특별한 고위험군은 없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성별에 따른 발생률과 유병률에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종적인 차이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 교수=“성별에 따른 차이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남녀 유병률이 숫자로 보면 45대55, 48대52 정도로 비슷하다. 수치로 보면 국내외 모두 5∼10%가량 여성에서 유병률이 조금 더 높게 나타난다.”
―말단비대증 진단은 어떻게 하나?
엘레나 교수=“환자의 인슐린 유사 성장 인자 1(IGF-1)을 먼저 측정한다. 성장호르몬 수치는 변동이 커서 단일 측정만으로는 진단적 가치가 낮다. 성장호르몬이 간에 작용하면 IGF-1이 분비된다. 뇌하수체종양이 성장호르몬 과분비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IGF-1의 분비가 증가하며, 일정한 수치가 유지되기 때문에 IGF-1 수치를 먼저 측정한다. 확진을 위해서 경구 포도당 부하 검사(OGTT)를 통해 성장호르몬 과분비를 진단한다. 정상적으로는 포도당을 섭취하면 성장호르몬 분비가 억제된다. 하지만 말단비대증 환자는 이 기능이 약해져 포도당 섭취 후에도 성장호르몬 수치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유지되거나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이들 환자의 성장호르몬 최저 수치는 정상인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므로 OGTT를 통해 성장호르몬의 최저 수치를 측정해 진단에 활용한다.”
―외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많은 질환인 것 같은데 조기 진단은 가능한가?
구 교수=“말단비대증은 외모에 큰 변화가 나타나지만 의료진이 이에 관심을 가져야만 진단이 되는 질환이다. 내분비학회를 통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에 마스크 착용률이 증가하자 말단비대증 발생률이 갑자기 감소한 바 있다. 말단비대증은 희귀질환으로 환경적 변화로 인해 발생률에 변화가 생기는 질환이 아니다.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 진단율이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진단에는 통상 10여 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레나 교수=“말단비대증은 진단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종양 성장에 시간이 걸리고 이와 함께 증상도 서서히 진행되므로 환자가 신체 변화를 늦게 자각하는 경우가 많다. 매일 만나는 주변 사람도 변화를 빨리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 깨닫거나 옛날 사진 속 모습을 비교해보고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질환의 유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질병 부담률이 높아지므로 진단 지연은 큰 문제가 된다.”
―희귀질환은 대개 진단의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따라 숨겨진 환자들이 있을 가능성은 없나?
구 교수=“말단비대증 진단을 위한 호르몬 검사는 상대적으로 비싸고 기본 국가건강검진 등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임상적으로 얼굴 모양의 변화, 당뇨병·고혈압 등이 어린 나이에 발생했거나 치료가 안 될 때 의료진이 먼저 의심하고 접근해야 알 수 있다. 환자가 스스로 선제적인 검사를 요청하기는 쉽지 않다.”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나?
엘레나 교수=“말단비대증은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심혈관질환, 당뇨병 등 합병증 탓에 사망 위험이 커질 수 있는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수술, 방사선치료, 약물치료 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뇌하수체 선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시도한다. 수술이 성공적이지 않거나 어려운 경우에는 방사선요법, 약물요법을 차례로 시행한다. 수술 후 선종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으면 방사선치료를 통해 종양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성장호르몬 과잉 분비를 조절한다. 다만 방사선치료는 효과가 수년 후에 서서히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며 치료 과정에서 뇌하수체 기능 저하로 인한 호르몬 결핍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자기공명영상(MRI)에 뇌하수체 종양이 보이는 경우에만 시행이 가능하며 시신경과 같이 방사선 치료에 취약한 구조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면 시행이 어렵다. 지름 1㎝ 이상의 거대 선종은 수술로 말끔하게 제거하기 어려운데 이때에도 약물을 사용해서 성장호르몬 과잉 분비를 조절한다. 약물요법에는 소마토스타틴 유사체, 성장호르몬 수용체 길항제, 도파민 작용제 등이 사용된다. 소마토스타틴 유사체 주사제는 일반적으로 4주 간격으로 투여되며 치료 반응에 따라 주기를 조정할 수 있다.”
―말단비대증의 원인인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면 성장호르몬 분비가 조절된다는 것인가?
구 교수=“수술은 말단비대증 치료의 1차 선택지다. 종양을 완전히 제거하면 성장호르몬 분비가 정상화될 수 있다. 그런데 뇌하수체 종양 제거는 고난도 수술로 의사의 숙련도에 따라 치료 성적이 크게 달라진다. 해외 지침에서는 연간 30∼50건 이상의 뇌하수체 종양 수술 경험이 있는 기관에서 수술하도록 하고 있다. 즉 실력이 뛰어난 신경외과 전문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숙련된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바로 약물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수술 성적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가 수술을 먼저 하게 된다. 말단비대증 환자 치료를 담당하는 지정 센터의 의료진 실력이 지속해서 향상되고 있기 때문인데 수술 성공률은 세계 최고 수준에 가깝다. 다만 국내에서는 해외 지침이 아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 기준에 따라야 하므로 약물 치료 접근이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수술이 어렵다는 신경외과 의사의 소견이 있어야만 약물치료가 가능하며 약제도 단계적으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만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의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국내 임상 환경에서는 제한적인 치료 옵션이 적용되고 있다.”
―말단비대증의 치료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
구 교수=“일반적으로 소마토스타틴 유사체는 10년 이상 투여한다. 최근에는 치료를 통해 안정적인 임상 수치를 유지하는 환자에게 투약 간격을 기존 4주에서 8주까지 투여 간격을 연장하여 주사 횟수를 줄이는 치료도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장기 치료에 대한 환자의 부담이 완화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30∼40%의 환자의 경우 치료 옵션이 아주 제한적이라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소마토스타틴 유사체에 조절이 되지 않을 경우, 성장호르몬 수용체 길항제를 이차 약제로 사용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해외 지침에서는 소마토스타틴 유사체 단독 치료 시 약 60%의 반응률을 보이므로 효과가 불충분할 경우 다른 약제를 병행하는 옵션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는 한 가지 약제만 단계적으로 사용하도록 제한돼 있다. 예를 들어 소마토스타틴 유사체와 성장호르몬 수용체 길항제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 한 가지는 비급여로 투여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아쉽다. 환자의 상태에 맞춰 다양한 약제를 활용하고 싶지만 지침은 제한이 많은 상황이다. 의료진의 임상적 판단보다 심평원의 지침을 엄격히 따라야 하는 현실에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말단비대증 환자나 치료 환경과 관련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구 교수=“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희귀질환과 관련된 환우회를 조직하기란 쉽지 않다. 말단비대증을 비롯한 희귀질환 환우회 조직의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빈도 질환과도 차이를 보이는데 희귀질환 환자들은 자신의 질환이 사회에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강해 환우회를 통해 환자들이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정책적 변화를 요구하려면 환자들이 적극 참여해 의견을 내야 한다. 의료진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엘레나 교수=“한국도 환우회 등을 통해서 환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유럽에서는 정책 결정 과정 등에 환우회 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유럽내분비학회에는 환자들이 준회원으로 가입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다. 실제 치료를 받는 당사자는 환자이기 때문에 이들의 의견은 사회적 자문 역할을 하며 정책 수립과 제도 개선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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