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질환 걱정했는데 늑간근 염증”… 환자 통합 관리 주치의 제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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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 제도가 필요한 이유
연간 외래 진료, OECD 평균 3배… 환자당 ‘주치의 제도’ 도입하면
치료 외에도 예방-검사 등 안내… 의료 쇼핑-약물 과다 방지 효과강재헌 교수

강재헌 교수
강재헌 교수
한 45세 남성이 며칠 전부터 왼쪽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심각한 심장질환이 아닐까 걱정돼 인근 대학병원 순환기내과 진료를 받았다. 심장 정밀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지만 흉통은 계속됐고 여러 진료과를 돌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후 통증의학과 진찰 결과 늑간근(늑골과 늑골을 연결하는 근육) 염증으로 진단돼 약물치료를 받고 좋아졌다.

흉통이 나타나면 심근경색 등 심각한 질환을 의심하지만 심장질환이 원인인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 흉통을 유발하는 원인은 위식도역류질환, 늑간근 염좌, 폐렴, 가슴막염 같은 폐질환, 불안증이나 공황장애, 대상포진 등 정말 다양하다.

만약 이 남성에게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진료와 상담을 해주는 주치의가 있었다면 대학병원의 여러 과를 돌면서 수많은 검사를 하는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주치의가 환자의 증상과 병력을 바탕으로 진찰과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했을 것이고 만에 하나 심근경색과 같은 심각한 응급 질환이 의심되면 곧바로 종합병원 응급실로 보내 골든타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조정자 역할을 했을 것이다. 당연히 여러 번의 진료와 많은 검사로 고액의 의료비가 낭비되는 것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순환기내과 진료가 필요한 다른 환자의 대기 시간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2023년 기준 한국 국민 1인당 연간 외래 진료 횟수는 평균 18회이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약 3배에 달하는 수치다. 환자 마음대로 1∼3차 병원을 자유롭게 이용하면서 ‘의료 쇼핑’과 ‘과잉 진료’가 만연하고 주치의가 통합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여러 만성질환 치료를 각각의 진료과 전문의에게 따로따로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의료비와 진료 횟수가 급증할 뿐만 아니라 다약제 사용으로 인한 건강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지 환자 스스로 결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이 자신의 주치의를 두는 것이다.

주치의는 환자가 아플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의사다. 주치의는 환자의 질병 여부를 확인하고 가벼운 질환은 직접 치료하며 필요한 경우 질병에 맞는 전문의를 소개해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주치의는 담당 환자의 급성 및 만성질환, 스트레스, 정신 건강까지 다양한 건강 문제를 포괄적으로 관리해 줄 수 있는 의사다.

또한 주치의는 질병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진료하므로 오랜 기간 지속해서 환자-의사 신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나를 진료해 온 주치의는 나의 병력, 먹는 약, 나의 건강 수준의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으므로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내게 꼭 맞는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주치의는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금연, 절주, 체중 조절, 스트레스, 예방접종, 필요한 정기검진까지 챙겨줄 수 있으며 상담과 교육을 통해 질병 예방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 아울러 환자가 여러 진료과를 방문해 지나치게 많은 약을 먹는 경우 상담을 통해 복용하는 약의 수를 줄일 수도 있다.

주치의 제도는 국민의 건강을 지속적·포괄적으로 관리하고 불필요한 의료 이용과 중복 검사, 약물 과다를 예방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며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 보편적 정책으로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의 선택권을 보장하면서 신뢰받는 일차 의료 전문과를 중심으로 주치의 제도의 점진적·단계적 도입이 가능하다. 국민과 의료인이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서 많은 국민이 가까운 동네 의원의 의사를 주치의로 정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의료비의 급증을 막으면서도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여 국민 건강 수준을 향상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헬스동아#건강#의학#늑간근 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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