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마(칸나비노이드·CBD)는 오랫동안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시행된 첫 후향적 평가 연구는 의료대마가 단순한 논쟁거리가 아니라 실제 환자에게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치료제임을 보여줬다.
사단법인 카나비노이드연구회는 희귀질환 환우회 단체인 한국의료대마운동본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와 함께 의료대마를 처방 받은 희귀질환 환자 202명 중 조사에 동의한 36명을 대상으로 후향적 평가 연구를 진행했다. 환자 다수는 소아·청소년 난치성 뇌전증 환자였고 대부분 에피디올렉스(의료대마를 원료로 만든 경구용 액상 의약품)를 복용했다.
연구 결과 환자 97%가 증상이 개선됐다. 특히 발작 빈도가 많이 감소했다. 이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존 항경련제에도 반응하지 않던 어린 환자들이 의료대마 복용 후 정도와 발작 횟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가벼웠다. 졸림, 피로, 식욕 변화, 가벼운 소화기 증상이 보고됐지만 대체로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다. 응답자 61%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환자는 월 100만∼300만 원 이상을 본인이 부담했다. 또 거동이 불편한 중증 환자는 “원격진료와 택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의료대마는 더 이상 회피할 주제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미 의료대마의 안전성과 의학적 유용성을 인정했다. 미국식품의약국(FDA)도 드라벳 증후군(영아기부터 시작하는 유전성 난치성 뇌전증)과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소아기에 나타나 발작과 발달장애를 동반하는 뇌전증) 치료제로 에피디올렉스를 승인했다. 현재 의료대마는 유럽 미국 일본 등 많은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국도 더는 늦출 이유가 없다.
의료대마는 치료의 ‘마지막 수단’이 아니다. 희귀질환 환자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치료법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건강보험 적용 확대, 의료대마 합법화,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통한 비용 절감 등이다. 환자와 가족이 경제적·제도적 제약에 가로막히지 않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한다.
의료대마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에게 주어진 생존의 권리다. 이번 연구 결과가 정책과 제도의 변화를 끌어내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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