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살 사망 상황이 최근 다시 나빠지고 있다. 지난해 인구 10만 명당 잠정 자살률은 28.3명으로 2년 연속 증가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상위 자살률을 언급하며 범정부적 대책을 지시했다.
그렇다고 뚜렷한 해결책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이미 ‘자살 예방 및 생명 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국가 종합 대책을 강력하게 추진한다고 공언해 왔지만, 그간 선진국 수준의 획기적인 예산 투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은 현재의 자살 예방 정책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이를 통해 반드시 포함돼야 할 핵심적 전략을 제대로 설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자살 예방 관리 종합대책에서 간과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바로 중독 예방관리 정책이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자살률을 낮추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사례를 보면 분명하다. 리투아니아는 한때 한국을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해줄 정도로 자살률이 높았다. 2018년 OECD 가입 당시 10만 명당 자살률이 27명 수준으로 한국보다 높은 자살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3년 기준 리투아니아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19.6명 수준으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 자살률이 상승하는 사이 리투아니아는 빠른 속도로 자살률을 줄였다. 비결은 다름 아닌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음주 감소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한 덕분이다. 자살 시도로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의 30∼50%가 음주 상태였다는 국내 연구 보고는 알코올이 일종의 자살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리투아니아는 200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음주 폐해와 알코올 중독 예방 정책을 시행했다. 2017년 모든 주류에 주세를 대폭 인상했고 2018년 법정 음주 가능한 연령을 올렸으며 주류 광고 전면 금지, 판매 시간 추가 제한 등의 조치를 내렸다. 또 알코올 소비세 중 일부를 알코올 해독, 조기 개입 및 치료 지원정책에 투입했다.
한국은 어떠한가. 보건복지부의 음주 폐해 예방 관리 사업 예산은 2006년 14억 원에서 2024년 9억여 원으로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독 대응 인프라다. 정부가 정신 건강 종합 대책에서 2023년까지 전국 100개 시군구에 설치하겠다고 계획했던 중독 관리통합 지원센터는 고작 60개 수준에 머물렀다. 그나마 센터당 평균 직원은 5명에 불과하다. 일부 알코올 중독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할 뿐 도박, 디지털 미디어 중독에 대한 복지부 차원의 개입은 전무하다. 불행해서 중독되고 중독돼 다시 불행해진다.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자살 예방 주무 기관 명칭이 ‘물질 남용 정신 건강 서비스국(SAMHSA)’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살 예방을 논하며 중독성 질환의 예방과 치료 재활을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것은 ‘글로벌 표준’에 속한다. 한국이 범정부 자살 대책을 다시 설계하는 지금, 중독 정책을 중심축으로 넣지 않으면 그 어떤 대책도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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