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의 메디컬리포트]지방병원 입원 중증환자 뺑뺑이, 갈 곳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14일 2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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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응급실 뺑뺑이(미수용)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9월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응급실 뺑뺑이(미수용)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얼마 전 청주 H병원에 뇌질환으로 입원한 83세 김모 씨. 최근 갑자기 호흡곤란을 겪었다. H병원엔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없어 의료진은 환자를 빨리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전했다. H병원 협력센터 직원이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충북대병원 등 대형병원 3곳을 알아봐 줬다. 환자를 당장 이송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은 일주일 뒤 입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충북대병원은 원칙적으로 암환자만 입원을 받는다고 했다.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H병원은 보호자에게 “다른 아는 병원이 없다”며 “혹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가면 받아 줄지도 모른다”고 했다. 결국 환자와 보호자는 40만 원가량을 들여 사설 구급차를 불러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원래 병원 간 환자 이송은 해당 병원에서 미리 이송 환자 정보를 알려 주고 조치하지만 무작정 찾아간 것이다. 예상대로 병원 응급실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결국 보호자는 여기저기 연락하다가 지인 소개로 보라매병원에 입원했지만 환자는 현재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더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8월 70대 김모 씨는 위궤양 치료를 위해 경북 안동S병원에 입원했다. 담당 의사가 내시경으로 궤양 출혈 부위를 막다 오히려 출혈이 더 심해지는 응급 상황이 발생했다. 지역응급의료센터인 안동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최선이었지만 안동병원은 S병원의 전원 신청을 ‘미수용’했다고 한다. 환자 측은 “보호자가 직접 전화해 하소연을 하거나 아니면 서울로 빠르게 전원해야 한다. 우리는 더 해줄 것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보호자가 직접 구급차를 부르고 이송할 수 있는 수도권 종합병원을 알아보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응급실 입원이 가능한 곳을 찾지 못하면 환자를 그냥 응급실로 데리고 가는 방법밖에 없다. 안동S병원 측도 서울아산병원이든 삼성서울병원이든 무작정 환자를 데리고 들어가면 그나마 응급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보호자에게 안내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결국 제대로 된 응급 조치를 받지 못한 채 그 병원에서 사망했다.

지난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미수용)’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에서 빠져나간 뒤 그 빈자리를 메우며 버텨 온 전문의마저 탈진으로 응급실을 떠나면서 발생한 의료 공백이었다. 최근 일부 전공의가 복귀하고 응급의료 관계자들이 여러 노력을 기울이면서 이런 현상은 많이 줄고 있다.

문제는 지방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상태가 악화돼 다른 병원으로 옮겨질 때다. 이런 경우 국내 환자 이송 시스템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환자와 보호자가 직접 이송할 병원을 알아봐야 할 정도로 여전히 ‘병원 간 뺑뺑이’가 발생하고 있다.

앞서 두 환자는 모두 기자 지인의 사례다. 왜 병원 간 환자 이송에서 의료진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못하고 환자 보호자에게 떠맡겨 놓는 상황이 발생했을까. 병원 간 이송에서 왜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고 이렇게 병원에서 일일이 전화를 하면서 중환자 입원이 가능한 곳을 찾아서 헤매고 있었을까. 궁금함과 답답함이 생겼다.

일본에서는 의료진이 태블릿PC를 꺼내 상황판에 환자의 상태를 올리면 환자가 입원 가능한 병원이 실시간으로 뜨고 바로 지체 없이 제일 가까운 병원부터 이송이 결정된다. 한국은 후진국형 시스템에 갇혀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매번 놓치고 있다. 그런데 중앙응급의료센터엔 지난해부터 서울경기, 강원, 전라, 충청, 대구경북, 부울경 등 6개 광역응급상황실이 설치됐다. 이곳에 도움을 청하면 어느 정도 해결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 병원은 아는 것일까. 물론 응급상황실도 일일이 인근 병원에 전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시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병원도 많다. 무엇보다 지방 환자들이 더 이상 이러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한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송 책임이 떠맡겨지는 ‘병원 간 뺑뺑이’가 더 이상 생기지 않아야 한다.

#응급실 뺑뺑이#환자 이송#병원 간 전원#의료 공백#전문의 탈진#지방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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