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 강남구 발란 본사가 있는 공유 오피스에 ‘발란 전 인원 재택 근무’라고 적힌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판매대금 정산 지연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발란은 이날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뉴시스
국내 명품유통 이커머스 1위 업체 ‘발란’이 그제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유통업체가 법정관리로도 불리는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하면 부채의 원금·이자 지급이 중단될 뿐 아니라 이곳을 통해 상품을 판 판매자들이 대금을 받는 데 차질이 생긴다.
특히 발란은 대금 지급이 늦어지는 데 항의하는 판매자들에게 정산을 약속해 안심시킨 뒤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해 비판을 받고 있다. 작년 1조5000억 원의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를 일으킨 티메프(티몬·위메프)가 ‘전산 오류 문제’라고 발뺌하다가 기업회생을 신청한 것과 판박이란 말이 나온다. 발란을 통해 명품을 판 업체 1300여 곳 중 상당수는 수백억 원 규모의 대금을 제때 못 받거나, 떼이는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발란 측은 투자유치 차질로 인한 단기 유동성 문제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업체는 2015년 창립 후 연간 영업이익을 낸 적이 없고, 코로나19 때 급등했던 명품 경기가 꺾여 매출도 줄고 있다. 투자 유치, 기업 매각은 물론이고 정상 영업이 가능할지조차 의심스럽다.
한국 이커머스는 연매출 230조 원, 세계 5위 시장으로 성장했지만, 수위 기업마저 이익을 못 내는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 티메프 사태 후 정부가 대금 정산기간 단축 등 대책을 내놨지만 경영 악화 사실을 숨기다가 막판에 ‘배 째라’식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걸 막진 못했다.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 10곳 중 4곳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여서, 발란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당국은 이런 기업들의 자금 흐름을 사전에 파악해 경영실패를 판매자나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