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기’ 1만 개 중 4개만 ‘중견’ 진입… 무너진 성장 사다리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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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년간 중소기업의 중견기업 진입률은 평균 0.04%, 중견기업의 대기업 진입률은 1.4%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중소기업 1만 곳 중 겨우 네 곳만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중견기업 100개 중 한두 개만 대기업으로 올라선다는 뜻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정부 통계 등을 분석한 결과다. 중소→중견→대기업으로 이어지는 기업의 성장 사다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기업 덩치가 커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규제 장벽의 영향이 크다. 대한상의와 김영주 부산대 교수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현행 경제 관련 12개 법에는 자산총액과 매출액, 근로자 수 등을 기준으로 매기는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가 343개에 달한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올라서는 순간 94개의 규제가 새로 생기고, 대기업으로 진입하면 규제가 329개까지 늘어난다. 대기업 중에서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343개의 규제가 적용된다.

성장 단계마다 겹겹의 규제가 쌓여 있으니 이를 피하기 위해 기업 스스로 덩치를 키우는 것을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이 고질적 병폐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매출 쪼개기 같은 편법도 동원되고 있다. 중소기업 문턱을 넘는 순간 규제는 대폭 늘어나는 반면 각종 세제·금융 혜택은 끊기다 보니 중견기업에서 다시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기업만 2023년 기준 570여 곳에 이른다. 이러다 중견기업은 사라지고 중소기업만 남을 판이다.

성장하는 기업들이 인센티브를 받기는커녕 이중삼중의 규제에 휘말리는 환경에선 혁신 기업들이 대기업으로 꽃피우기 힘들다. 미국 10대 기업이 20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 하나만 남고 9개가 엔비디아·애플·아마존 등으로 교체되는 동안 한국 10대 기업은 단 2개만 바뀐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규제가 늘어나는데 어떤 기업인이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겠느냐”며 “대한민국의 성장이 정체되고 민간 활력이 떨어지는 근본 이유”라고 했다.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의 탈출구를 찾으려면 기업 성장을 벌하는 역차별 규제를 서둘러 수술해야 한다.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기업 성장#규제 장벽#이중삼중 규제#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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