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과 합의한 3500억 달러(약 486조 원) 대미 투자펀드 이행방식 등을 놓고 양국 관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펀드 조성에 앞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맺자고 미국에 요청했다고 한다. 대미 투자를 위해 달러가 빠져나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외환시장의 충격을 막으려면 최소한의 안전판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통화 스와프는 유사시 자국 화폐를 맡기고, 대신 미리 정한 환율로 상대국 화폐를 빌려올 수 있도록 두 나라 중앙은행이 맺는 계약이다.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맺으면 한국은 한도 없는 ‘달러 마이너스 통장’을 보유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코로나 팬데믹이 번진 2020년 두 차례 양국은 한시적 통화 스와프를 맺은 적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우리 외환보유액의 84%에 해당하는 달러가 미국에 투자될 경우 외화유동성에 심각한 압박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원화가치도 급락(원-달러 환율은 급등)해 수입물가가 오르고, 국민의 구매력이 줄어 경제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과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과 상설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맺은 나라들은 일본, 유로존, 영국, 캐나다, 스위스 등 모두 준(準)기축통화국에 속하는 국가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 규모,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수익배분 방식 등을 고려할 때 통화 스와프 체결 요구는 무리하다고 할 수 없다.
당장 오늘부터 일본의 대미 관세율이 한국보다 10%포인트 낮아져 우리 수출기업들의 피해가 커질 전망이다. 그렇다고 국가 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3500억 달러 투자 협정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수용할 수는 없다. 투자 기간을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하고, 투자 대상도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쪽으로 조정해야 한다. 정부는 한미 통화 스와프 문제만큼은 미국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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