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39억4000만 달러(약 5조4500억 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6위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25% 증가한 수치이며,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비율 역시 사상 최고치(0.21%)를 기록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 ODA의 양적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이 수치가 가리고 있는 구조적 문제, 즉 ODA의 분절화는 여전히 심각하다.
한국의 ODA는 기관별로 철저히 이원화돼 있다. 무상원조는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유상원조는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수출입은행이 담당한다. 두 기관은 서로 다른 철학과 절차, 그리고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사업을 수행한다. 이 때문에 원조를 받는 수혜국 입장에서는 ‘하나의 한국’이 아니라 ‘서로 다른 한국’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 결과 중복 사업이 생겨날 뿐만 아니라 각 사업의 장기적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일본은 국제협력기구(JICA)를 통해 유상과 무상을 통합 운영하며 효율성과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로, 전력망 등 인프라 건설(유상)을 추진하는 동시에 지역병원 역량 강화와 공중보건 인력 양성(무상)을 연계해 지속 가능한 개발 효과를 실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도로 건설은 기재부, 인력 양성은 외교부로 분리돼 시행된다. 통합 기획이나 평가 역시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최근 지방자치단체까지 소규모 ODA 사업에 참여하면서 나타난 무분별한 예산 분산이다. 각 지자체는 적은 예산으로 소규모 사업을 개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혜국에서는 기억되지도 지속되지도 않는 ‘명함용 사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국민 세금의 비효율적인 낭비일 뿐 아니라, 한국 ODA의 국제적 위상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양자 간 직접 원조는 총 31억8000만 달러로 전체 ODA의 81%를 차지했다. 그중 무상원조가 22억2000만 달러, 유상원조는 9억6000만 달러다. 문제는 집행 과정에서 유·무상 간 협력 부재로 인해 비중이 높은 무상원조 사업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있다. 특히 국제 보건 분야에서는 인프라 지원과 인력 양성, 감염병 대응 시스템 구축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이러한 종합적 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제는 유·무상 통합을 통해 전략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 설치를 적극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통합 컨트롤타워 조직을 통해 ODA 일관성을 유지하고 예산 효율성을 높이는 유·무상 원조 통합 계획을 수립하며, 부처 및 지자체 ODA 사업의 중복을 방지해 수혜국의 수요에 기반한 대규모 패키지 사업 추진이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개별 예산 단위를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 규모로 묶어 사업의 연속성과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
ODA는 단순한 원조가 아니라 외교·안보·경제를 아우르는 국가 전략이다. 따라서 지금의 분절화된 구조를 혁신하지 않으면, 양적 확대는 오히려 세금 낭비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유·무상 원조를 통합하는 컨트롤타워 설치를 통해 전략적이고 지속 가능한 원조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ODA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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