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구이 성지’ 마포에서 묻는다… 갈매기살 이름과 맛의 비밀을[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9일 10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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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도화동 ‘부산갈매기’의 갈매기살. 김도언 소설가 제공
서울 마포구 도화동 ‘부산갈매기’의 갈매기살.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지금은 그 어디서∼”로 시작하는 가요 ‘부산갈매기’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국가 이상의 지위를 갖는다. 부산 연고 야구팀의 응원가로 쓰이면서 그 지위는 불가역적인 것이 됐다. 바닷가에서 흔히 보는 친근한 갈매기를 모티프로 연모의 마음을 애절하면서도 서민적인 멜로디에 녹여낸 이 노래는 충청도 출신인 나도 가끔 흥얼거릴 만큼 좋아한다. 그런데 ‘부산갈매기’를 상호로 쓰는 노포가 서울 마포에 있다. 돼지고기의 특수 부위 중 하나인 갈매기살을 중심 메뉴로 삼는 고깃집이다. 1978년부터 47년째 영업해 와서 충성스러운 단골들도 어지간하다. 필자가 찾은 평일 낮에도 삼삼오오 앉아 숯불 향 가득한 갈매기살을 구우며 한 잔씩들 기울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이 집이 ‘간판 메뉴’로 삼고 있는 갈매기살은 돼지의 중심부 횡격막과 간 사이에 있는 살코기를 말한다. 왜 그 부위를 갈매기살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횡격막은 말 그대로 가로지르는 막을 말하는데 도축하던 사람들이 횡격막에 붙은 살을 가로막이살 또는 가로막살이라고 불렀고 이 말이 전설모음화와 언어유희의 단계를 거쳐 갈매기살로 굳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마포 부산갈매기의 갈매기살은 심심하면서도 전혀 밋밋하지 않은, 잘 숙성된 양념에 재워 나오는 게 특징이다. 이를 숯불에 잘 구워서 소금 기름에 찍어 먹거나 쌈 싸 먹는데 잘 구운 갈매기살은 쇠고기와 비슷한 절묘한 맛을 선사한다. 부산갈매기는 파채, 마늘, 쌈 채소, 쌈장, 소금과 함께, 다른 집이 다 내놓는 된장찌개 대신 우거지 된장국을 내놓는 게 특징이다. 이 된장국 맛이 또 일품이다. 갈매기살은 돼지 한 마리당 300∼400g밖에 안 나오는 희소한 부위여서 고깃집 대부분이 외국산을 쓰는데 부산갈매기도 그것은 매한가지고 1인 180g에 1만7000원을 받는다. 쇠고기 맛 나는 귀한 부위를 이만한 가격에, 그것도 갈비살과 항정살, 갈매기살 등의 숯불구이 성지로 알려진 서울 마포 한가운데서 맛보는 건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집에서 내 눈에 특이하게 달려든 것은 바지런히 일하는 이국적인 세 명의 알바 청년이다. 우리 테이블을 서빙한 남자 알바생에게 살짝 말을 건네니 미얀마에서 2년 전에 한국에 왔다면서 자신의 이름을 푸앙리라고 소개한다. 나머지 두 명의 여자 알바도 미얀마 친구들이라면서 나이도 한두 살 차이라고 했다. 사실 세 알바는 늦은 점심을 먹는 중이었는데, 손님들이 필요한 걸 갖다 달라고 하면 푸앙리가 제일 먼저 일어나서 총알처럼 뛰어나가는 것이다. 여자 알바 두 사람의 식사가 계속될 수 있도록 신사도를 발휘한 것이리라.

나는 가만 생각해 본다. 미얀마라는 나라에서 온 젊은 청년들에게 서울 마포란 무엇일까. 부산갈매기란 무엇일까. 갈매기살이라는 이름이 왜 갈매기살인 줄은 아는 걸까. 왜 한국 사람들은 고기 한 점에 소주 한잔을 먹으며 이토록 행복해할까. 아니, 다 떠나서 자기들이 일하는 식당 이름을 사람들은 도대체 왜 소리 높여 노래 부르는 걸까. 아마도, 당연히 그 애틋한 기호와 상징을, 이들은 한국 사람만큼 알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노포는 이들 외국의 젊은 청년들에게 일자릴 제공하면서 화장을 벗긴 한국의 맨얼굴을, 그 속내와 진심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다. 또다시 노포의 문화사회학이 되고 말았는데, 노포란 그런 곳이다.

#숯불구이#마포#부산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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