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화해할 수 있을까[임용한의 전쟁사]〈359〉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31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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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의 반체제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의 회고에 의하면 그의 부친은 학창 시절 레프 톨스토이를 존경했다. 어느 날 힘들게 톨스토이를 만난 부친은 이 대문호에게 물었다. “갈등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하시오.” “상대가 나를 미워하고 해치려고 해도요?” 톨스토이의 답은 한결같았다. “사랑하시오.”

솔제니친은 톨스토이의 순진한 사랑 타령을 한심하게 여겼지만, 톨스토이의 절대적 박애주의는 식민지 조선에서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일제가 이에 감동하고 반성할 리가 없었다. 실망한 청년들은 극단으로 달렸다. 독립운동가 김산은 ‘아리랑’에서 의열단원 대부분이 한때 톨스토이주의자였다고 했다.

개인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딱한 사정을 배려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상대의 단점마저도 사랑한다면 칭찬받는 연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서로 전쟁 중인 국가라면, 한 국가가 상대의 상태와 약점을 알고 충분히 이해한다면, 그리고 그가 강한 쪽이라면 화해와 사랑 대신 공격을 선택할 것이다. 국가 간의 평화는 힘의 균형에 의해 유지된다.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서유럽 국가들이 충분한 군비와 억제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당선되면) 24시간 안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는 트럼프의 장담과 달리 양측 간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화해는커녕 서로 강경한 카드를 꺼내면서 한쪽이 굴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타국의 전쟁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우리 사회도 상호 이해는 고사하고, 힘과 분노의 강을 도하하기 직전이다. 모두가 걱정 중인데, 권력에 중독된 사람들만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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