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 비염 잡는 도꼬마리의 위력[이상곤의 실록한의학]〈161〉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5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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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어린 시절 소 꼴을 베러 산에 올랐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여지없이 옷에 달라붙는 풀이 있었다. 바로 도꼬마리다. 시골에선 소리 없이 집까지 붙어온다 해서 ‘도둑놈’이라 욕하지만 한방에선 ‘창이자(蒼耳子)’라고 불린다. 세종 때 간행된 ‘향약집성방’에는 ‘도고체이(刀古體伊)’로 쓰여 있다.

도꼬마리의 열매, 즉 창이자에는 가시가 많다. 어딘가에 잘 붙을 수 있는 이유는 그 가시 끝이 구부러진 갈고리 모양이기 때문이다. 요즘 매직테이프로 많이 쓰이는 ‘찍찍이’도 1947년 스위스의 전기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라는 사람이 사냥을 나갔다 옷에 붙은 창이자의 갈고리 모양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것이다.

창이자는 예로부터 알레르기 치료에 쓰여 왔다. 중국 송나라 때 편찬된 ‘엄씨제생방’은 창이자에 대해 “폐허로 콧속이 막히고 콧물이 끊이지 않고 나오거나, 혹은 숨이 통하지 않거나 향기와 냄새를 맡을 수 없는 것을 치료한다”고 쓰고 있다.

알레르기로 인한 비염은 맑은 콧물과 재채기, 가려움 등의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콧물의 색깔이 노래지고 걸쭉하게 변해가면 감기일 경우가 많다. 한의학도 맑은 콧물이 흐르면 비구(鼻鼽)라 해서 감기, 즉 상한과 구별했다. 숙종 37년, 노론을 이끌었던 이이명이 왕이 콧물을 자주 흘린다는 얘기를 듣고 그 상태를 물었는데, 왕의 답은 “상다구체(常多鼽嚔)”였다. 즉 “콧물과 재채기가 항상 반복된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전형적인 알레르기 비염의 증상인 셈이다.

온 천지에 꽃이 만발한 봄은 눈은 즐겁지만 코에게는 잔인한 달이다. 콧물, 재채기, 가려움증 등 알레르기 비염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소나무의 꽃가루인 노란 송홧가루가 날릴 때 재채기와 콧물이 가장 심하다. 그래서인지 소나무로 둘러싸인 사찰의 스님들 중 매년 꽃가루 알레르기 비염을 앓는 분들이 많다. 증상이 심해지는 시기가 부처님오신날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독송하기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코는 우리 몸에 들어오는 이물질 등 적병을 일차적으로 막아내는 최전방 부대다. 5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이상의 이물질은 코털이, 세균과 바이러스, 초미세먼지 등 그보다 더 작은 것은 콧속의 점액이 각각 걸러낸다. 마치 점액으로 곤충을 잡는 끈끈이주걱처럼 이물질을 흡착해 밖으로 밀어내거나 삼켜서 방출한다. 건강한 강아지라면 코가 촉촉해야 한다는 속설도 그만큼 콧속 점액이 면역의 핵심 역할을 한다는 방증이다.

푸른색을 띤 창이자는 몸 안의 점액을 잘 퍼뜨리는 약효를 가져 면역의 핵심 기능을 한다. 창이자의 겉껍질에는 다시 2개의 작은 열매가 들어 있는데, 재미난 점은 두 열매 속 씨앗의 발아 시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중 다소 작고 종피도 두꺼운 씨앗은 먼저 발아한 새싹에 어려움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좀 늦게 돋아나거나 몇 년 후에 돋아난다고 한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생존 가능성을 키우려는 것이다.

요즘은 알레르기 증상을 완화하는 데 항히스타민제를 많이 쓰지만 점액의 분비로 면역 기능을 도와주는 한의학적 치료는 근본적인 건강을 도모하는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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