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강제 남한살이’ 60일… 북한의 ‘자국민 외면’ 이유는?[손효주 기자의 국방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5일 23시 09분


코멘트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7월 해군 고속정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목선을 인양하는 모습. 당시 이 목선에 타고 있던 주민들은 NLL 월선 40여 시간 만에 북한으로 송환됐다. 동아일보DB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7월 해군 고속정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목선을 인양하는 모습. 당시 이 목선에 타고 있던 주민들은 NLL 월선 40여 시간 만에 북한으로 송환됐다. 동아일보DB
손효주 정치부 기자
손효주 정치부 기자
어린이날인 5일은 북한 주민 2명이 ‘반강제 한국살이’를 한 지 60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들도 어쩌다 실수로 넘어온 한국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수로 한국으로 넘어온 북한 주민이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60일 넘도록 머무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표류 등으로 한국에 온 북한 주민을 송환하는 데까지 걸린 기간은 최근 10년을 기준으로 평균 6일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였던 2019년 7월엔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주민 3명이 NLL 월선 40여 시간 만에 북한으로 ‘초고속 송환’되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한국에 장기 체류 중인 북한 주민 2명은 3월 7일 서해에서 목선을 타고 어업 활동을 하던 중 NLL을 넘어 표류하다 우리 군에 발견됐다. 30대 남성들로 우리 군에 발견된 직후부터 귀순 의사가 없으며 북한으로 보내 달라는 뜻을 분명히 해 왔다.

현재 남북 간 연락 채널은 모두 끊긴 상태여서 정부는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유엔사와 북한군 간 직통전화인 ‘핑크폰’으로 연락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5일 현재까지도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정부는 북한 주민 2명 신병을 우리 정부가 확보한 사실이 3월부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등 알려질 대로 알려진 만큼 북한 당국도 이 사실을 일찌감치 인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 속내를 알 길이 없지만 북한이 연락받지 않는 건 지극히 의도적”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송환 절차를 진행하려고 각종 아이디어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적십자 채널이나 북한 주재 스웨덴대사관, 스위스대사관 등을 활용하는 방법이 거론됐지만 정상적인 송환 절차를 우선한다는 원칙이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에서 소형 확성기로 북한에 직접 알리는 방법도 검토됐지만 북한과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실행되진 못했다고 한다. 정부는 최후 방안으로 언론을 통해 일정과 장소를 북한에 알린 뒤 송환을 실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북한이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이유를 두고 남한과는 어떤 의제로도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그것이 자국민 송환 관련 의제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미 2023년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이후 남북을 이어주던 경의선과 동해선을 폭파하는 등 물리적 단절 조치를 실행해 왔다. 남북 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끊어놓겠다고 수차례 선포한 북한인 만큼 자국민 송환을 위해 판문점에서나마 단 몇 초라도 남북이 접촉하는 모습을 대내외에 노출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음 달 3일 대선을 통해 정권이 진보정권으로 바뀔 경우 북한이 그제야 응답하고 송환 절차를 진행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대선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3일 9·19 남북 군사합의 복원 의지를 피력하는 등 당선 시 남북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역시 시간이 꽤 걸릴 것이란 분석이 많다. 북한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북한은 주민 송환 효과가 가장 극대화될 전략적 타이밍을 보고 있을 것”이라며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도 곧바로 주민 송환을 받기보다 남북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한 우리 정부의 파격적인 대북 제안이 있고 난 뒤에야 송환을 진행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자국민을 60일 넘게 외면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 주민은 북한만 바라보고 있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우리 정부 관리하에 수도권 모처에 머무는 이들은 남조선 괴뢰의 물로는 씻지 않겠다며 샤워조차 하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의 선전물을 볼 수 없다며 TV는 아예 켜지도 않는다고 한다. 북한식 표현대로라면 대적 투쟁관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이들로 북한 체제를 수호하는 당성 투철한 ‘진짜배기 인민’인 셈이다. 다만 이들은 금방 가능할 것 같던 귀환이 좀처럼 진행되지 않자 줄담배를 피우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이후 줄곧 ‘인민대중제일주의’를 핵심 통치 이념으로 강조해 왔다. 인민을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기겠다는 뜻이지만 60일째 한국 땅을 떠돌며 북한의 응답만 기다리는 이 주민들 앞에서 멋쩍은 구호일 뿐이다. 북한은 언제쯤 이 주민들에게 이른바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실현해 보일까. 한국에 체류 중인 북한 주민 2명이 언제쯤 눈물겨운 짝사랑을 끝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북한 주민#한국 체류#송환 절차#남북 관계#반강제 귀순#김정은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